(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14. 내 어깨를 두 팔로 토닥이며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한다.
나의 의지를 담아, 내가 단호하게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결기가 느껴진달까.
나를 계속 응원하고, 성장시켜 나간다는 것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는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멈추지 말아야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힘든 날이 있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길 바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회의 시간에 서로의 마음이 잘 맞아 착착, 진행이 되는 것은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각자의 위치가 있고, 입장이 있고, 상황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 투정 같은 일이다.
각자 맡은 일만 잘해도 좋을 텐데-라고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슬쩍 담아도 보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지- 누군가에게 강요하기는 어려운 목표라는 걸 안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고, 서로의 목표가 다르지만 조직 내에서 조율하고, 맞춰가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팀 리더의 역할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프로젝트가 타이밍 때문에 불발이 된다거나,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야외행사가 때 아닌 태풍으로 취소된다거나,
시나리오 카드를 여러 차례 맞춰보고, 꼼꼼하게 준비했던 초대손님이 갑자기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는
생각이 많아진다.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고, 자꾸... 단계를 복기하면서 이렇게 했다면 달라졌을까를 곱씹으면서.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타이밍이고, 내가 조정할 수 없는 태풍이었고, 그 초대손님의 갑작스러운 불참 역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큰 스트레스는 이렇게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차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찾을 때 온다.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을, 아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건 쉽지 않으니,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방법은 좋은 날, 행복한 날, 즐거운 날의 기억으로 층층이 무장하고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란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이럴 때, 나는 휴대폰을 열어 사진첩을 본다.
여행지에서 일출을 보는 내 모습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맛집에서 1시간이 넘게 기다리며 웨이팅 하는데도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동시에 뛰려고 여러 번 노력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넷 중 하나는 여전히 땅에 발을 내딛고 뛰어오르려고 얼굴이 열일하는 모습을,
너무 예쁜 지금 모습을 찍어서, 빨리 메신저로 전송해주고 싶은데 내가 눈으로 보는 것만큼 찍으니 그 감동이 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 차례 같은 하늘을 찍고 또 찍었던 순간을,
사무실로 배달온 깜짝 선물에 귀가 뜨거워지는 느낌에도 좋아서 사진을 찍어 보관하던 그 당시의 내 마음을,
아무 날도 아니고 불쑥 누군가에게 책 배달이 시작되었다고 메시지 알림을 받고 캡처했던 그 화면을.
여행지에서 조차, 지금의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앞으로도 그리울 거란 예감이 들 때면
그 사진에 하트를 눌러 즐겨찾기를 해둔다.
오늘의 행복함이 차곡차곡 쌓여, 힘든 날 내 마음에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겠지.
대신 일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내 마음의 부침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나를 제일 많이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주는 위로와 온기만큼 소중한 것이
내가 나를 아껴주는 온기다.
그리고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 날에는 혼자 팔을 둘러, 나를 다독여준다.
주변에서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일단 내가 행복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다. "수고했어 오늘도"
음악회에 맞춰서 큰 마음먹고 방문한 통영에서,
음악당 앞에 보이는 일몰을 보면서, 감탄사도 잊은 채 멍하니 멈춰 섰던 기억이 있다.
생각했다. 통영의 바람을 기꺼이 견디며 보게 되는 오늘의 일몰이, 막막하고 먹먹해진 마음으로 퇴근하는 어느 날, 나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해 서글퍼지는 어느 날 꺼내보게 될 거란 걸, 알아졌다.
이런 기억들을 나에게 많이 저축해 두는 게, 앞으로도 힘이 빠져 무릎이 꺾이는 순간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탄성 좋은 운동화 역할을 해줄 거란 걸.
일출을 보며 바다를 따라 달리는 건 늦잠으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오늘 하루의 어느 순간, 하루를 마무리하고 바다 아래로 몸을 뉘이는 뜨거운 해처럼 나 역시 반짝거림이 버겁고 어려울 땐 그저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어떠하냐고. 나에게 말해줬다.
자꾸자꾸 시선을 빼앗기는 통영의 일몰이 광화문 퇴근길에서 마주하는 일몰의 순간에도... 내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핫팩처럼 주무를수록 따뜻하게 덥혀주는 기억이 될 거란 걸, 그때도 알아졌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왜 없겠나.
슬프고 서러워서 당장 휴먼굴림체로 사표 한 장 써서 던지고 싶은 날이 왜 없겠나.
왜 이렇게 한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냐고-
네 시간은 소중한데 내 시간을 왜 이렇게 막 쓰냐고 상대방에게 쏘아붙이고 싶은 날이 왜 없겠나
나의 진심이 왜곡되고, 나의 노력이 폄하된다고 느끼는 순간,
그때 누구보다 나를,
어떤 사람보다 나를 우선으로 아껴주자.
수고했다고, 오늘도.
하루하루 어려운 시간이 있어도,
고단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끝에도
수고했다고 오늘도.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가장 깊게, 가장 따뜻하게 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