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이소라(Feat. SUGA of BTS))
25. 소소한 행복, 다정한 소감
(신청곡-이소라(Feat. SUGA of BTS))
때때론 잠시 쉬어 가고플 때
함께임에도 외로움에 파묻혀질 때
추억에 취해서 누군가를 다시 게워낼 때
그때야 비로소 난 당신의 음악이 됐네
그래 난 누군가에겐 봄 누군가에게는 겨울
누군가에겐 끝 누군가에게는 처음
난 누군가에겐 행복 누군가에겐 넋
누군가에겐 자장가이자 때때로는 소음
함께 할게 그대의 탄생과 끝
* '다정한 소감'이란 문구는 김혼비 작가 '다정소감'에서 따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혼비 작가님의 글을 애정합니다.
'다정'이란 단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이다.
다정, 다감이란 단어는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온기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단어를, 이런 문장을 좋아하는 나지만,
힘든 순간을 마주하면, 내가 나에게 가장 각박하고 야박해질 때가 있다.
그 와중에 좋은 사람이고 싶고, 미움받고 싶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은 얻으면서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것이 욕심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면,
나는 그저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합리화가 늘어가는 직장인이 되었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가끔 행간과 자간 없이 그저 건조한 결과로 정리되는 나의 시간들이 답답해질 때쯤
'소심한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소소한 스터디, 소심한 스터디, 때로는 트리플에스(sss)라고 부르며
2주에 1번 정도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의 주제를 가지고 '스터디'라고 부르는 소소한 잡담을 시작했다.
외국계기업, 공공기관까지 각자의 소속도, 관심 분야도, 나이도 다른 네 명이지만,
다정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각자의 하루를 채워나가길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우리의 주제는 참 다양했는데,
코로나로 공공기관에서 조차 재택근무가 시행되었던 그 시절에도 우리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서 다도, 맥주, 명상, 한옥 등 서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수다를 나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자신은 없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과는 나의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미생들이었다.
시험을 볼 것도 아니고, 이걸로 면접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딱히 쓸모가 있어서가 아닌, 내가 관심 있고 내가 알고 싶었던 잡학의 것들을
나머지 셋과 나누는 일정을 지속했다.
서로 PT를 만들어서, 발제자료처럼 화면에 띄워서 내가 정리한 것들을 공유하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모두 범생이 스타일이라서, 수다의 주제를 PPT로 만드는 열정을 뽐냈다.)
켜켜이 시간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임신과 출산을 응원했고, 누군가의 이직을 응원했고, 누군가의 상실을 위로했으며,
누군가의 분노에 함께 있어줬고, 정의할 수 없는 변화의 시기에 같이 파도를 탔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유형, 무형 유산들을 짚어보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는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한 주는 밀키트 시장이 얼마나 증가추세인지 따져보다가,
그다음 주는 AI, 메타버스 등의 기술발전으로 눈여겨봐야 하는 주식종목을 살펴보기도 했다.
첫 수다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났다.
그때 우리의 대화들이 기억나냐고? 대부분 휘발되듯 나의 뇌 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 우리가 시시콜콜하게 대화를 나눴던 온도는 기억난다.
나는 그 시간이, 내가 나에게 주는,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는 다정한 시간이라고 믿었다.
주제가 진짜 다양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일기예보가 계속 틀릴 때는 기상예보시스템과 슈퍼컴퓨터에 대해서 공부했고
미국의 대선시스템부터 유기농 와인, 24 절기의 의미와 십이간지를 알아봤다.
세계적인 한글 열풍을 짚어보고, 휴가철이 다가올 때는 각자 1 Day Tour 계획을 짜서 마치 내가 팀 리더인양
사람들을 각자가 원하는 여행지로 이끌었다.
대화를 나눌 때 결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았지만 관심사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내적친밀감이 높은 멤버의 설명을 듣다 보면 나도 위스키를 마셔보고 싶고,
오늘은 커피보다는 차를 마셔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것 말고 새로운 것의 경험을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느낌이랄까.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충동적으로 선택한 것들이 때론 깊은 여운과 만족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믿고 추천하니, 나 역시 조금은 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포부랄까...
그런 만족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3년의 시간 동안 가능한 정기적으로 주제를 가진 수다를 떨기 위해 노력했다.
야심 차게 우리의 대화록을 출판하겠다는 계획이 여러 출판사에 거절당하고,
코로나 이후 업무가 바빠지면서 흐지부지 해졌다.
(우리는 서로 유튜브를 통해 얼굴을 공개할 용기는 없어서, 팟캐스트를 할 요량으로 수다마다 녹음을 했는데, 서로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소심한 스터디용 부캐를 만들어서, 부르기도 했다. 맞다- 우린 이 시간에 진짜 진심이었다. 수많은 출판사에게 거절당하다가, 어느 날은 1인 출판에 대해서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끔 모여 브런치를 먹는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원했던 것만큼 결과물로 매듭을 짓지 못했지만 그 시간 우리가 서로를 만나 다정한 시간을 보냈노라고.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귀찮지만 발제자료를 만들고, 좋은 책과 문구가 있으면 단톡방에 공유하면서
우리는 그 시절, 서로에게 다정했고 스스로에게 다감했다고.
제니(**의 부캐명이다)가 수제맥주를 발제한 날이었다.
나에게 맥주는 술이었다. 누구에게는 음료이고, 누구에게는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이고, 누구에게는 탐험의 주제이고, 누구에게는 배움의 도구라면... 나에겐 그저 술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도 한 몫하지만 술을 잘 즐기지 못하는 성정도 한 몫했다. 대학원을 들어가서 술을 어떻게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도구가 되는지 몸소 체험한 이후에도 나는 술은 그저 한 두 모금 마시는 거 정도, 조금만 술을 마셔도 온몸이 '술 마심'으로 티 나게 변신하는 것을 알기에 매번 조심스럽게, 관리를 하는 대상이었다. '더 마시면, 술 취한 사람처럼 보일 거야' 이런 고민과 걱정으로.
나는 술이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술을 즐기는 것이 나의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모두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제니의 '수제맥주 알고 마시기' 주제로, 수제맥주집에서 메뉴판을 보면서 하나씩 시음을 하면서- 좋아하는 걸 즐기면서 잘하게 되고, 그렇게 돈도 벌 수 있는 마치 게이머가 세계를 제패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정말 맛있었다는 말이다.)
단순히 맛있다가 아니라,
맥주가 좋아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맛있는 맥주를 친구도 마셔보게 하려고...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해 자신들만의 '수제맥주'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면서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그걸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기준에 이런 게 '다정하고 다감한 현상'이다.
맛도 좋고, 가고 싶고, 어느 순간 이게 업이 되면 지치는 순간이 오기도 하겠지만, 내가 시작한 것이 늘어가고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제니가 알려준 맥주 고르는 방법(메뉴판 읽는 방법)을 배웠다. (배웠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족집게형 암기에 가깝지만...) 샘플러를 쭈욱 깔아 두고 메뉴판을 공부하면서 한 모금씩 마셔보는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알코올이 나의 기분을 들뜨게 만든 것도 있지만 나의 취향을, 나의 기호를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10개의 맥주 샘플러를 깔아 두고,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서점에서 오늘은 딱 한 권만 사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거나, 먹고 싶은 점심메뉴가 많지만 오늘의 기분과 날씨를 고려해 딱 이 메뉴라고 고르는 결단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치 프로듀서 101 중에 한 명은 내가 팬이 될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가 나타나고, 너무 멋있는 스우파 멤버 중에서도 유난히 좋은 사람이 생기듯이. 단순히 맥주 샘플러뿐만이 아니다. 내가 오늘은 어떤 걸 즐기고 싶은지, 커피든, 맥주든, 오늘의 점심 메뉴든, 분위기에 휩쓸려서 같은 메뉴로 통일하더라도 내가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별로일 거 같았는데 해보니 좋았다. 맛없을 거 같았는데 마셔보니 맛있었다 내 취향이다. 결국 이런 하나하나가 경험이고 체험이고, 도전이고, 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이 편해서 제자리에서 멈추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보니 지금의 선택이 나랑 더 잘 맞는다는 걸 깨닫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취향은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기도 하지만 또 변화하기도 하니까.
여전히 게으르게 나를 사랑하지만 다양한 선택지를 나에게 주고, 내 취향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만큼은 나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어 소소한 행복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