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 윤종신)
24. 그 밤, 나에게 빛이 쏟아졌다
(나이- 윤종신)
채 두 자리를 넘기기 어려운데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하지 말아야 할 게 늘었어 어린 변화는 못 마땅해 고개 돌려 한숨 쉬어도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 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밤, 나에게 빛이 쏟아졌다.
캄캄한 밤에, 나에게 쏟아질 듯 어울렁 어울렁 춤을 추며 나에게 쏟아지는 오로라를 보면서
평생 이 순간을 기억하겠구나... 그냥, 알아졌다.
사는 게 정신없고 힘들어서, 마음이 지쳐서,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현재에 집중해서
되새길 시간도 없이 쫓기듯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창을 가운데 두고, 비 오는 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에,
멍 때리는 순간처럼 잡념이 사라진 순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가요?"라고 누가 묻는 순간이 다가온다면
나는 지금을 떠올리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왜 아이슬란드냐고 물으면... 오로라가 보고 싶어서...라고 답할 수밖에.
나의 첫 번째 유럽 여행지는 핀란드였다. 왜냐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살고 있으니까.
나잇값을 운운하며 유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러 핀란드에 갔다.
나의 쇼핑욕구를 자극하는 엘프들과 수다를 떨면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Hello 산타! 내가 왔어요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는 건 무료지만, 그 할아버지와의 사진을 간직하는 건 수십 유로가 든다는 걸,
할아버지와의 만남을...(자본주의와 세일즈, 마케팅 등의 단어를 표면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내 카드값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산타 할배 집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며,
이 순간 떨리고 흥분된 느낌들이 그들에게도 전해지길... 기도했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서 왜 아이슬란드냐고 묻는다면,
정말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오로라를 검색하면 캐나다, 핀란드 다양한 나라가 후보군에 오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슬란드가 가고 싶었다.
뭐랄까... 크게 마음먹지 않으면 가지 못할 거 같은 거리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많은 국민이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데 마치 친구를 만난 것만 같았다.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반지원정대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오로라 원정대 수준으로,
우리는 숙소를 예약하고, 취소하고, 예약하고,
물가를 고려해서 예산을 짜고, 가져갈 준비물들을 준비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사야 하는 물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발리에 가면 비치 원피스를 예쁜 거 입어야 사진이 좀 잘 나올 거 같고,
유럽은 태양이 강하니까 눈 건강을 위해 선글라스를 다시 사야 할 것 같고,
에코백은 필수품이라니까... 이렇게 면세점 장바구니에 쟁여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준비물품들은 그것과는 좀 결을 달리했다.
방한부츠를 준비하고, 패딩은 얼마나 따뜻한지,
보온병은 인당 1개씩 챙겨가고... 세 명이 떠나기로 한 여행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블로그를, 때론 같은 여행후기 블로그를 보면서 리스트를 현황해 시켜갔다.
그렇게 준비를 한참... 마치 기분은 이미 아이슬란드를 걷고 있는 느낌으로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링로드를 따라 장기간 자동차를 타야 하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여행을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비행기티켓을... 취소했다.
히트텍, 방한부츠, 심지어 아이젠까지... 집에 쌓여있는 여행물품들을 보면서
오로라 원정대는 수납공간의 부족함을 서로에게 호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2월에 떠나려고 준비했던 아이슬란드 여행을 잠정 연기하고,
다음 해 3월, 우리는 몸이 좀 회복된 친구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기로 했다.
나를 보고 오묘하게 웃는 매력적인 알룐카 초콜릿의 고향,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짧은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유럽 느낌이 물씬 나는
이국적인 그 도시에서, 꽝꽝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언젠가 보게 될 오로라는 더 아름다울 거라고, 곧 다가올 그날을 꿈꿨다.
세 명은 모이기만 하면, 아이슬란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블루라군과 레이캬비크- 같은 단어들이 어느새 내 삶 깊숙하게 자리 잡기 시작하고,
너무 많이 읽고 보아서,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마치 경험한 것과 같은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영국을 거쳐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침 9시가 되어도 어슴푸레하게 어두웠고,
오후 4시가 되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는 시기였다.
너무 추웠고, 추웠지만 이렇게 깜깜할수록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다고 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추위를 즐겼다.
하루 이틀, 왜 오로라가 보이지 않을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의 모든 숙소는 오로라를 보기 좋은 곳으로 정했고,
우리의 모든 동선은 오로라 보기 좋은 일정으로만 정했다.
오로라 지수가 높은 날 뛰쳐나가기도 하다가...
이래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어떡하나 마음이 급해져
현지 여행사가 운영하는 '오로라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디론가, 어두컴컴하고 빛 한점 없는 공터에 내렸다.
오늘 못 보면, 오로라를 볼 때까지 계속 A/S를 해준다는 이 투어는
정말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모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때, 누군가 외쳤다.
모두가 웅성거리며 조금씩 물결처럼 일렁이는 오로라 띠를 저마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본 오로라는, 서울에서 수십 번 본 오로라는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너울거렸는데
이렇게 수줍은 듯 일렁이는 오로라가 뭔가 아쉽다고 느끼기도,
그래도 이렇게 봐서 다행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며 그 밤을 보냈다.
친구가 들어가 있는 '오로라를 위한 단톡방'에는 아직도 오로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는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장갑을 두 겹으로 껴고도 너무 추워, 보온병 입구에 손을 녹이면서
그래도 우린 다행이라고, 봤으니까 괜찮다고 계속 계속 돼 내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숙소로 이동한 그 밤.
창문으로 쏟아지듯 너울거리며 우리를 맞이하는 오로라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푸하하 폭소할 만큼,
우리가 보고 싶었던, 큰 띠가 너울거리며 나에게 안기듯 나가오는 그 오로라.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사진을 찍으니 더 선명하게 나와서
추워도 추운 줄 모르게 자꾸 사진을 찍으면서 발 구르고 소리 지르게 만들었던 '나의, 우리의 오로라'
그 오로라의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내 카드는 아직 나보다 한 달을 더... 아이슬란드에 머물렀다.
카드값을 갚으려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위해, 오로라 사진을 휴대폰 바탕화면에 저장해 두고
마치 자린고비가 굴비를 보듯 매일매일, 눈으로 인사했다. Hello, 오로라. 나의, 우리의 오로라.
우리가 그토록 기대했던 순간을 마주하고 나자, 정작 할 말이 없어졌다.
각자 생각에 빠져, 혹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 시간을 오롯하게 내 안에 담았다.
나이가 들수록, 지레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누군가에 대한 가치평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선입견.
어쩌면 그래서 내게 주어질 수 있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이미 내 선에서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생각하게 될 만큼 방어적으로 변화하는 나이가 되었다.
살다 보면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노력한다고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어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온다.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어느 순간의 소소하고 다양한 크기의 행운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는 순간부터, 애타게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어떤 날은 실망하고 어떤 날은 웃게 되겠지만
매 순간 노력을 한다고 결과가 항상 내 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하지만, 그 한순간을 위해, 작은 우연들이 겹쳐서 나에게 오는 기적이 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진리도 알게 되었다.
큰 일일줄 알았지만, 막상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닌 일들,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될 줄 알았지만 내 안에 여운으로 남는 순간들.
뭐든 것을 아는 나이란 건 없다.
평생을 탐험하듯, 모험하듯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
일주일에 3시간, 일 년에 며칠 정도는 나에게 모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나이가 든다는 건,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현명함을 얻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내 시간을 던지는 무모함도 얻는 과정이다.
오래 기다렸고, 애타게 원했고, 그래서 비로소 마주하게 된 나의 오로라.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앞으로도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추워도, 아쉬워도, 부족해도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테스트베드가 되었길 바랄 뿐이다.
부디, 다음에도 나를 위해서 기꺼이,
바쁘고 정신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준비해서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