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울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은 과학적 사고, 결정론, 자유 의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제목 속 ‘라플라스’는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를 뜻한다. 그가 상정한 ‘라플라스의 악마’는 우주의 모든 입자들의 현재 상태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모두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가상의 존재다. 이는 곧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세계는 하나의 커다란 계산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과학적 결정론을 뜻한다.
작품의 출발점은 두 건의 사망 사건이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동일한 자연조건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이를 사고로 처리하지만, 기상학자 아오에는 미세한 자연의 변화를 통해 이 사망 사건들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 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때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마도카’다. 그녀는 인간의 시야로는 감지하기 힘든 자연의 흐름—기류, 온도, 기압, 바람의 세기 등—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계산하는 인물이다. 마도카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인간의 형태로 구현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측 가능성’이라는 과학의 위대한 힘과 그 위험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자연현상이 완벽히 예측 가능한 정보로 환원될 수 있다면, 살인조차도 자연사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설정은 무척 소름 돋는다. 이는 단순한 과학 트릭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인간성의 경계를 어디까지 밀어낼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실제로 마도카는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 실험과 조작의 결과로 ‘능력자’가 되었고, 그녀의 능력은 경외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라플라스의 마녀』의 진정한 무게는, 인간이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가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있다. 모든 조건이 예측 가능하다면, 우리의 선택은 의미 있는가?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고 있을 뿐인가? 이 작품은 독자를 이 철학적 질문 앞에 세운다. 추리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범인은 누구인가’의 서스펜스가 아니라,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라는 심층적 의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인물 간의 관계도 흥미롭다. 마도카와 그녀를 지켜보는 엔도, 그리고 이 세계의 규칙을 탐구하려는 아오에의 삼각 구도는, 과학, 도덕, 인간애라는 세 가지 축이 팽팽히 맞서는 구조다. 아오에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하지만, 마도카는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 이 불균형은 기존의 ‘탐정과 사건’이라는 추리의 공식조차 전복시킨다. 독자는 결국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밝혀내는 데서 쾌감을 얻기보다는, 인간이 감히 통제하려는 세계의 본질 앞에서 느끼는 불가해함과 무력감을 더 크게 경험하게 된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과학과 철학, 추리와 인간 심리의 경계에 선 독특한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예측’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매혹적인 동시에 위험한지, 과학의 힘이 인간의 감정과 윤리 너머까지 도달했을 때 어떤 균열이 발생하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도는 건,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이런 질문들이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의지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야말로, 이 소설이 남긴 가장 강력한 여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