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인생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의 온기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파란만장한 인생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마음을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이 책은,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더 진실되게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자신만의 신념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조용히, 얼마나 단단하게 싸우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 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농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접한 순간 자신의 삶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그는 문학에 매료되어 전공을 바꾸고, 이후 평생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아간다. 겉보기엔 학문에 헌신한 성공적인 교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스토너의 결혼 생활은 불행의 연속이다. 아내 에디스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립된 존재로 남는다.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따뜻했지만, 결국 아내의 개입과 정서적 단절로 멀어지게 된다. 직장에서는 동료 교수와의 갈등, 정치적인 암투에 휘말리며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는, 밖에서 보기엔 별일 아닌 듯 보여도, 그의 내면에는 차곡차곡 고통으로 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타인의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문학, 그리고 문학을 통해 만나는 진실한 순간들에 의지하여 자신의 존재를 지탱한다. 학생에게 시를 읽어주는 장면, 연구를 통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는 장면들에서 그는 진정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스토너에게 삶이란, 외적인 성취가 아닌 내면의 진실을 붙드는 것이다.
스토너의 고독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독 속에서 그는 순수하고 단단한 자아를 유지한다. 그것은 타인과 충돌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충돌한 후에도 자신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남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삶을 ‘버틴’ 것이 아니라, ‘살아냈다’. 작가 존 윌리엄스는 그런 스토너의 모습을 통해 조용한 인간 존엄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스토너』는 묻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가족, 사랑, 직업, 신념… 우리가 집착하는 이 모든 단어들의 의미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진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감정, 그리고 작지만 확고한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