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죄는 침묵하지 않는다

by 엔시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단순한 연쇄살인 미스터리로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양심, 죄의식, 정의라는 본질적 질문을 끈질기게 묻는 심리극이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내면에는 법을 피한 죄인들에게 내려진 초월적 심판극이라는 깊은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배경은 외딴섬. 열 명의 서로 다른 계층, 직업, 연령의 인물들이 ‘어떤 부유한 인물의 초대’를 받아 그곳에 모인다. 그러나 그 초대장은 실체 없는 존재의 것이었고, 도착과 동시에 그들은 섬에 고립된다. 이후, 음성 녹음으로 과거의 범죄가 폭로되고, 섬 안에서 하나둘씩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살인의 방식은 모두 벽에 걸린 동요 ‘열 꼬마 병정’의 내용과 일치한다. 누군가가 그 동요에 따라 살인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공포는 살인의 수법이나 범인의 정체보다, 각 인물이 어떤 죄를 숨기고 있었는가에 있다. 그들은 모두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 과거를 지니고 있다. 살인의 정당화, 방관, 자기 합리화로 얼룩진 이들의 죄는 은폐되었지만,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형태로 떠오른다. 마치 양심이라는 또 다른 심판관이 이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듯하다.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살인 이전의 침묵과 회피가 더 깊은 죄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자신의 책임을 모른 척했고, 누군가는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방어적 윤리의식을 산산이 깨뜨린다. 섬이라는 장소는 단순히 외부와의 단절이 아니라, 도망칠 수 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의 장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특유의 간결한 문장과 논리적인 플롯 구성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만, 이 소설에서는 논리만으로는 풀 수 없는 불쾌한 여운을 남긴다. 범인은 놀랍도록 치밀하고, 그의 동기 역시 ‘정의’라는 이름 아래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하지만 독자는 끝까지 혼란스럽다. 과연 그것이 진짜 정의였는가? 죄를 심판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죄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가, 아니면 심연 속에서 끝내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장르소설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되, 그 규칙이 다하지 못한 부분—정의의 공백—을 문학적으로 채운다.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모두 죽었으며,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의 마음속에는 질문 하나가 남는다.

“그들을 죽인 건 누구인가?”

그것은 범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죄였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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