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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Mar 02. 2023

남들 다 하는 퇴사이야기

후회하지 않는 방법

나는 '후회'를 싫어한다. 뒤돌아서 그 순간의 결정을 부정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기에 열심히 살아야 하고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써 더 나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후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스스로 새롭게 한 약속들을 외면하고 있다. 날씨 탓을 하며 장난스럽게 게으름을 피워 보았다. 장난을 끝내볼까 했지만 얼마 안 가 우울해졌다. 덩달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무기력해졌다. '열심히 살아서 뭐 해. 잘 할 수도 없고 잘 될 일도 없는걸' 역설적이게도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인생 중 가장 무기력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남들 다하는 퇴사 이야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취업을 하기 위해 무작정 중국으로 갔다. 

지방 대학교 출신 여자가 중국어 전공을 살려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외롭게 일하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고 서울에서 일을 하는 것이 폼 나겠다 싶었다.  

운 좋게 중국 사무소에서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화장품 해외영업 분야에서 연차가 굵어졌다.

한 분야에서 경력이 쌓여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하게 되는데, 그간의 수고와 능력을 인정받아 신분 상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렇게 화려한 30대를 시작한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고 곧 첫째가 태어났지만 3개월의 출산 휴가만 쓰고 출근을 했다. 회사의 모든 여직원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새로운 회사에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둘째 아이가 생기기까지 4년 사이에 육아휴직 제도가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둘째를 출산하게 되면서 1년의 육아휴직을 당당하게 내게 된다. 그 당시의 결정이 내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나의 커리어에 치명적이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직 후 나의 자리에는 새로 입사한 후배들이 앉아 있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 자리를 비워 둘 수는 없었을 거라며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외영업 업무가 아닌 총무 업무가 주어졌다. 바이어들과 연락할 일이 없으니, 주 특기인 중국어를 쓸 일도 없다. 탕비실에 비어있는 스낵을 채우고, 복지물품을 관리하고, 사내 체육대회를 기획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또한 상관없었다. 육아 후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팀장이 상담을 청했다. 회사 복귀 후 정확히 3개월 만이었다. 

“요즘 회사 생활 어때? 이제 좀 적응됐어? 원래 하던 일 못해서 속상하지 않아? “

같은 팀에서 동료로 지내던 남자 선배는 대표가 새로 부임한 후 팀장으로 진급했다. 

“지금까지 그 일만 해 왔는데, 그렇죠 뭐~ , 언제쯤 제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그래서 말인데 뜨아씨가 잘하는 그 일, 다른 곳에 가서 맘껏 펼치길  바라. “

마치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의 미래를 위하는 듯 했지만, 말로만 듣던 권고사직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저보고 나가라는 말씀이세요? 제가 왜 나가요? "  

“대표님이 기존의 해외 비즈니스를 모두 철회했고, 뜨아씨에 대해 감사 진행을 하게 될 거야. 뜨아씨가 그때 담당이었으니까.” 

“제가 왜 감사를 받아요? 제가 어떻게 업무 진행을 했는지 팀장님도 다 아시잖아요. “

당연히 회사에는 보고서 자료가 정확히 남아있기 때문에 임원이 아닌 일개 직원 상대로 감사 같은 건 있을 리 없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조직에서 육아휴직을 1년 써버린 발칙한 최초의 여직원이라 소위 윗분인 새로운 대표님에게 찍힌 것이다. 회사에서는 문제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 나가 주기를 바랐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문들로 회사 내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더럽혀지고 있었다. 어쩐지 회사 내에서 동료들이 나를 보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분명 이상함을 느꼈는데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너무 바빠서 회사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하원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회사일도, 가정일도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실수가 없기만을 바랬다.   


사직을 권유받은 후 회사 동료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그러게~ 뜨아씨 육아휴직 1년은 너무 했지. 적당히 6개월만 쓰고 나오지 그랬어 “ 

연차가 가장 오래된 마케팅 팀장. 그녀 역시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선배가 나를 눈치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을 듣고 얼이 빠졌다. 같은 여자로서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으니 기분이 나빴다.    

어느 남자 팀장님은 나에게 버티라고 했다. 

"대표는 2년 뒤에 또 바뀔 거고, 어쨌든 회사에서는 버티고 남는 사람이 승자야." 

한번 버텨볼까? 버티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하면서, 하지도 않은 일로 오해를 받으면서, 나를 쫓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면서, 그렇게 버틸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불행한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며 잘 키울 자신도 없었다.  




들리는 바로는 내가 퇴사한 이후 한동안 그 회사 직원들은 아이를 출산해도 알아서 육아휴직을 6개월 밖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육아휴직의 첫 케이스가 나쁜 사례로 남았기에 여직원들은 눈치껏 버티고 있을 것이다. 사실 여직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회사다. 왜냐하면 회사 직원의 80%가 여자이니까. 당연한 권리인지도 모르면서 다수가 소수의 눈치를 보고 있다.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10년 커리어를 쌓는 동안 세상일은 내 맘 같지 않고 잘 할 수도 없고 잘 될 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간 삶에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나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뿐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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