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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r 07. 2024

의자를 집어던지는 체.어.맨.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일부 내용을 변경하였으며,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잠자리채를 들고 매미 잡으러 나무 구석구석을 주시하는 꼬마들이나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하는 아이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나는, 옛날 사람이 분명하다. '어린이'로 불리던 초등학생들은 '초딩'을 거쳐 요즘엔 '잼민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상이 아이들을 보는 시선도,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어딘가 순수함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천진한 사랑스러움을.


허울 좋막연한 환상이 단한 신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혹독한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발령 해에 만난 승건이. 승건이는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린이에 대한 신규교사의 환상은 한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출처 : adobe stock)

여느 때 같은 평범한 어느 쉬는 시간이었다. 남자아이들 몇몇이 시시덕 거리며 수다를 떨다가 뒤에 있던 승건이 책상을 쳤는데 그 바람에 승건이 필통이 바닥에 엎어졌다. 아이들이 승건이의 널부러진 필기구들을 대충 주워서 필통에 담는데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웃긴지 주워 담으면서도 시시덕 거린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승건이가 그 장면을 목격한다.


승건 : 왜 내 필통을 뒤지냐고!!!

동호 : 야, 우리가 니 필통 떨어뜨려서 다시 담아준 거야!

승건 : 거짓말하지마!!!


대화는 두 번의 핑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종결되었다. 승건이의 눈빛은 완전히 분노로 휩싸였고 승건이는 의자를 집어 들었다.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의자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나갔다. 승건이를 막아서서 잠시의 실랑이 끝에 의자를 뺏어서는 바닥에 내려놓고 호통을 쳤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고 승건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장 놀라고 가장 울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선생님이니까.



승건이는 꼼꼼하고 성실한 아이였지만 감정 조절에 서툴렀다. 승건이는 매우 짧은 시간에 강렬한 분노지점에 도달했다. 분노에 완전히 휩싸인 아이의 눈을 보면 눈빛이 돌아있었다. 그럴 때면 승건이의 손에는 의자가 들려 있다. 승건이는 의자를 들고 분노의 대상을 위협하며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승건이의 분노가 어느 시점에 촉발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문제였다.


나도 시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별의별 특이한 놈들을 많이 봤지만 의자를 던지는 녀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의자를 던지는 행위는 커터칼 휘두르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특수폭행 아닌가. 당시는 '학교폭력'이라는 개념도 없을뿐더러 학교 내 상담교사도 없던 시절이었다. 교실에서 일어난 문제는 어떻게든 담임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 그렇지 않으면 교사로서 무능한 거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때였으므로 나 역시 오롯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 후 승건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건이 엄마는 나의 예상과 달리 매우 차분했다. 오늘 일에 대해 전해 듣고는 아무것도 되묻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승건이를 훈계해서 보내겠다는 짤막한 대답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그래, 아무래도 충격이 컸겠지. 충격이 큰 만큼 잘 훈육해 주실 거야. 하지만 뿌리가 깊은 문제일수록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다음 날 승건이와 점심시간에 둘이서 운동장을 걸었다. 어제 엄마하고 이야기 좀 나눠보았냐는 나의 말에 승건이는 아무 대답이 없다. 답답한 내가 재차 묻자 승건이는 어제 엄마를 못 만났다고 말했다. 일찍 퇴근하고 가서 아이랑 이야기하겠다던 승건이 엄마의 말이 거짓일까, 어제 엄마를 못 만났다는 이 아이의 말이 거짓일까?엄마에게 혼났다는 얘기를 하기가 자존심 상해서 그러는 건가? 머릿속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 승건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승건 : 선생님... 저희 엄마는 집에 오면 방문을 잠가요.

나 : 응? 그게 무슨 얘기야?

승건 : (울먹이며) 저희 엄마는 집에 오면 방문을 잠그고 방에서 안 나와요.


(출처 : adobe stock)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처음에는 승건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승건이의 가정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승건이 엄마는 집에 와서 아이 밥을 차려 놓고는 안방으로 가서 방문을 잠근다. 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갈 때쯤 승건이 엄마는 혼자 식사를 한다. 필요한 준비물이나 요청할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다음 날 식탁 위에 필요한 만큼의 돈이 올려져 있는 식이다.


 이 집에는 사람 간의 대화가 전무하다. 어제 승건이는 엄마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으로 시작한 노크는 '쿵쿵'이 되었다. 문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질러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부짖으며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승건이는 공허와 살고 있었다.


승건이의 아빠는 지금은 같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에 승건이를 참 많이 때렸다고도 했다. 그 폭력이 지금 같이 아빠와 같이 살지 않는 이유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른다. 승건이는 제 입으로 말했다. 자기가 아빠를 닮은 것 같다고. 자기도 쓰레기가 된 것 같다고.




승건이는 이후로도 그 해에 두 번 더 의자를 들었다. 승건이는 나와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깊이 뉘우치는 듯 보였지만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비웃는 것 같다든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든가 하는 자격지심에도 끊임없이 시달렸다. 가정이 무너진 아이의 마음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사랑을 붓고 인정을 쏟아부어도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경험했다. 정서행동 위기학생을 위한 지원이 조금씩 생겨나는 요즘 같은 때에 승건이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겸했으면 아이가 드라마틱하게 편안해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 남아있다.


(출처 : adobe stock)


승건이는 20살이 되기까지 세 번 나를 찾아왔다. 녀석은 의자 던지는 학생은 자기밖에 없지 않았냐는 너스레를 떨며 그런 놈들은 애저녁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셀프 디스를 날린다. 나 역시 '그동안 가르친 학생 중에 힘들기로는 네가 1등'이라는 말로 가볍게 응수한다. 마지막으로 승건이가 나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시덥지 않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지나가는 말로라로 부모님 이야기를 피했던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던 걸까. 승건이가 먼저 얘기를 꺼낸다. 엄마가 문 잠그든 말든 자긴 상관없다고. 왜냐고? 이제 자기가 먼저 방문을 잠그니까. 우리는 같이 하하하 웃었지만 웃음 끝이 맵다.


20살 이후론 승건이를 만나지 못했다. 세 번 의자를 던진 승건이는 공교롭게도 세 번 나를 찾아오고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단지 제 삶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이제는 나에 대한 마음의 빚이 청산되어서인지 그 이유는 모른다. 들을 수 없는 소식이 나는 궁금하다. 서른을 코앞에 둔 그 녀석이 지금은 방문을 열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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