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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13. 2024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는 까부는 게 디폴트입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반엔 무려 50명 남짓한 아이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숙제라도 내려고 교탁 앞으로 나갈 때면 통로 좌우로 빼곡히 걸린 친구들의 책가방을 겅중겅중 건너야 했다. 그만큼 교실은 바글거렸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운동장 조회 시간엔 운동장이 꽉 들어차도록 많은 아이들이 줄을 주욱 서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을 들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들어갈 때는 또 어떤가. 각 반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아이돌 댄스 동선 마냥 반별로 대형을 착착 맞추어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로 넘쳤던 학교. 나의 기억은 그랬다.


(출처 : adobe stock)


2024년 서울 관내 초등학교의 평균 학급당 인원수는 21명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해 절반 넘는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 50명이었던 아이들이 20명이 되었으니 2/5만큼 더 조용해졌을까? 아니. 교실은 여전히 시끄럽다. 아니, 어쩌면 더욱 시끄럽다. 줄어든 대신 강력해졌달까?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인류를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 아이들은 나를 말로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하는 짓은 나를 이모쯤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줄어든 교실에선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거리는 줄고 관계의 밀도는 높아졌다.




사춘기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는 고학년은 제외하고, 중저학년은 여전히 선생님을 티 나게 사랑한다. 자기들끼리 아직 어색한 3월엔 특히 그렇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내 책상으로 모여든다. 자기 집 반려동물 이야기, 주말에 어디 갔다 왔다는 얘기, 동생이랑 싸운 얘기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려고 아이들은 줄을 서면서까지 순서를 기다린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귀여운 그림 따위를 그린 작은 쪽지를 주고 배시시 웃으며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다 3월이 지나고 점차 자기들끼리 친해지는 때가 오면 나는 거들떠도 안 본다. 그러면 나는 쉬는 시간에 느긋하게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3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내 책상 근처에 한 번도 안 온 아이가 있었으니 우리 반 승원이였다. 승원이는 멀찌감치 서서 애들이랑 내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 쪽으로 오진 않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오라고 손짓해도 연신 도리도리를 하며 자기 자리에만 앉아있곤 했다. 계속 쳐다보긴 하는데 왜 가까이 오진 않는 걸까. 나는 또래와 어딘가 다른 승원이가 신경 쓰였다.

(출처 : adobe stock)


승원이는 불타는 열심을 가진 아이다. 글도 열심히 쓰고 그림도 열심히 그린다. 승원이는 글씨도 열심히 쓴다. 글씨를 얼마나 꾹꾹 눌러쓰는지 공책의 다음다음 장까지 글씨 자국이 남아있을 정도다. 알림장 검사를 할 때면 3줄 정도의 내용을 쓰는데도 땀범벅이 된 얼굴로 공책을 내민다. 하도 글씨를 눌러써서 승원이의 공책을 한 장씩 넘기면 물에 젖었다 마른 화선지 넘길 때 나는 사라락 소리가 크게 났다. 승원이는 밥도 열심히 먹는다. 승원이는 3월 한 달 내내 급식을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앞뒤 친구들이랑 떠들다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급식을 먹는 게 여느 아이들인데 승원이는 급식도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먹었다. 승원이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가까워지면서 상호작용이 많아지자 승원이와 마찰을 빚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마찰의 이유를 들어보면 대체로 '기준'에 대한 것들이었다. 기준을 타이트하게 적용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장면에서 불편한 상황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가위바위보를 했단다. 승원이는 쟤가 0.5초쯤 늦게 냈으니까 반칙이라고 하고, 상대 친구는 승원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자기가 졌다고 괜히 어깃장 놓는 거라고 억울해하는 식이다. 줄을 설 때도, 놀이를 할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그런 상황들이 종종 생겨났다. 누구나 친구들끼리 놀다 보면 애매한 경우들이 생길 때가 있지만 승원이에겐 그런 경우가 너무 자주 있었고 이 녀석은 절대로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 사이에서 승원이는 어느새 '예민한 친구', '화가 많은 친구'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승원이의 열심이 궁금했다. 얘는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열심인 걸까. 잘했다는 나의 칭찬을 듣고도 자리로 가서 더 쓰고 더 그리고 더 만드는 이 아이를 그렇게 몰아가는 동력은 대체 뭘까. 한동안 풀릴 길 없던 나의 의문은 학부모 상담 기간에 승원이 엄마를 만나고서야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승원이 엄마는 풍겨오는 분위기며 목소리까지 매우 부드러운 분이었다. 승원이 이야기로 시작된 얘기는 어느새 가정 이야기로 옮겨갔다. 승원이의 아빠는 매우 엄격하시다고 했다. 사실 교육적으로 봤을 때 엄격한 것은 이점이 많다.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되는지 확실한 기준을 배울 수 있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원이네 집 이야기를 하나둘 듣다 보니 승원이의 아빠는 엄격한 분이 아니었다. 승원이 아빠는 기분파였고 자기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승원이네 집에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어제는 맞던 것이 오늘은 틀린 것이 되기도 했다. 승원이 엄마는 말씀하셨다. 본인은 남편이랑도 아들이랑도 마찰이 없는데 아이랑 아빠가 마찰이 많아서 고민이라고. 얘가 이제는 아빠한테 맞아도 아빠 말을 듣지 않아 걱정이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출처 : adobe stock)


승원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문득 구슬땀을 흘리며 급식을 먹던 녀석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녀석의 땀에 젖은 머리칼이며 축축한 목덜미가 생각났다. 곧 부러질 것 같이 잔뜩 힘을 주고 살아가는 대나무 같은 아이. 승원이는 아마도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기분에 따라 맞고 틀리는 것이 계속 바뀌는 승원이네 집에서 아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올곧은 성품의 승원이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승원이의 무의식에선 이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 반에서 제일 글씨를 잘 쓰면, 우리 반에서 밥을 제일 잘 먹으면, 우리 반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면. 내가 제일 잘하는 아이라면 아빠가 뭐라고 못할 테지.' 


아빠에게 흠 잡힐 것이 없을 때까지, 완벽을 향해 내달렸을지 모를 승원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하필 그때 생각이 났다. 내가 승원이의 활짝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나는 승원이가 잘 느끼지 못했을 '느슨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우선 승원이 모둠에 낙천적인 친구들을 붙여주었다. 음악시간에 노래하다가 신이 나면 춤추는 아이, 우스개 소리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껄껄 웃는 아이 등등. 승원이 모둠 친구들은 아름다운 느슨함을 가진 친구들로 특별히 엄선하였다. 승원이는 분명 이런 아이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됐는데도 직전 수업시간에 이미 완성했던 글이나 그림을 더 하겠다는 승원이에게 나는 말했다. 그건 집에서 해와도 되니까 지금은 같이 놀아보면 어떻겠냐고. 녀석은 처음 몇 번은 절대 안 된다더니 계속 꼬셨더니 못 이기는 척 논다. 잘 웃지 못하는 승원이 몫까지 더 깔깔 웃어주는 따뜻한 친구들과 같이 몇 번 재미지게 놀다 보니 즐거웠던걸까. 승원이도 점차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 속에 파묻혀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쉬는시간 만큼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출처 : adobe stock)


그러고 보면 승원이 본인은 모르겠지만 승원이는 수업시간이며 쉬는 시간에 나를 흘긋흘긋 많이도 본다. 어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큰 까닭이겠지. 어쩌다 우리 둘만 눈이 마주치면 나는 승원이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인다. 보통 아이들은 그런 경우 같이 따라 미소를 짓지만 승원이는 다르다. 승원이는 어색한지 어깨를 으쓱하고 눈을 돌린다. 그러면서도 또 선생님을 흘긋거리는 가련한 아이. 


사람은 잘 안 바뀐다고들 한다. 그래도 아이의 경우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직 덜 굳어진 말랑한 아이들의 경우는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승원이처럼 심성이 바른데 방법을 모르는 경우엔 더욱 그렇고. 다행히 함께한 시간이 쌓여갈수록 승원이는 조금씩 더 편안한 모습을 내보였다. 가끔 숙제를 빼먹고 안 가져오기도 하고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냐고 자화자찬을 하는 날도 생겼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숙제는 빼먹지 말고, 글씨는 바르게 쓰라고 가르치지만 승원이에겐 좀 빼먹기도 하고 대충 해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아이는 저마다 다르니까.




그러던 가을의 어느 날 나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을 수 있었다. 승원이가 알림장 검사시간에 공책을 내미는데 얼핏 보면 승원이 것인지 몰랐을 정도로 그냥 '보통의' 글씨가 써져 있었다. 나처럼 공책검사를 업으로 삼다 보면 필체만 봐도 우리 반 누구 공책인지 금방 알게 된다. 못 보던 글씨체라 누구 공책이지 싶어서 얼굴을 올려다보니 승원이다. 도장을 찍고 공책을 건네며 네 글씨인지 몰랐다는 말을 건네는데 승원이가 말했다.


"이 정도면 잘 썼죠?" 


승원이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앞니 두 개가 빠져 휑한 이빨을 드러내면서 녀석이 웃는다. 그렇다고, 정말 그렇다고 화답하며 나도 웃는다. 웃음 끝에 코 끝이 약간 시큰해져 오는 걸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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