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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08. 2024

30명을 울리기 위한 치밀한 음모

선생님이라고 만우절 날 뻥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초등선생님들에게 일 년 중 언제가 가장 긴장되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3월이라고 답할 거다. 매년 3월 2일이 되면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관계없던 아이들이 오늘부터 '같은 반'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모인다. 키도, 마음도, 살아온 배경도, 품고 있는 생각도 죄다 다른 이 아이들은 이제 1년을 함께 보낼 운명공동체가 된다. 누군가를 만날 때 처음 맺는 관계의 틀이 나중까지 이어지는 건 아이들을 대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3월에는 특히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되는지,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뭔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말하자면 선생님들에게 3월이란, 스타트업 빌드업 시즌 같은 느낌이랄까.

< 출처 : adobe stock >

긴장감 넘치는 3월이 끝나갈 즈음엔 아이들과 슬슬 정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 우린 서로를 조금 안다. 학급엔 평화로운 날들이 많고 학급운영도 안정궤도에 접어드는 시점이 이때쯤이다. 마침 날도 포근해지고, 우리 마음도 같이 포근해지고. 그 맘 때였다. 내가 뭔가 일을 꾸밀 음모를 떠올린 시점이.




나는 초등교사들이 많이 이용한 인@스쿨 이라는 커뮤니티에 자주 방문해 수업 아이디어를 얻거나 공유한다. 그날도 다음 주 수업 준비를 위해 거길 들렀다가 재미난 글을 보았다. 어떤 선생님의 경험담이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작년 만우절날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각자 반에 가서 거짓말을 쳤단다. 무슨무슨 사정으로 이번주까지만 하고 다음 주부턴 너희들을 볼 수 없다고. 우리 반 선생님 바뀐다고. 그랬더니 아이들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단다. 바로 뻥임을 알아채서 다 같이 웃고 넘겼다는 반도 있고, 진짜인 줄 알고 엉엉 울었다는 반도 있고, 그럼 어떤 선생님이 오냐며 새로 오실 분은 예쁜지, 젊은지 물어서 오히려 선생님이 상처받았다는 사례도 있었다. 나는 곧장 상상 속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대입해 보았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심히 궁금했다. 하지만 괜히 했다가 상처만 받고 끝나는 건 아닐까며칠을 갈팡질팡 고민하다가 나는 결국 결심했다. 저질러보기로.


기왕 하기로 한 거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하여 나는 치밀한 음모를 꾸몄다. 일주일 전부터 나는 복선을 깔았다. 늘상 하던 잔소리 끝에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와 같은 멘트를 덧붙였다. 아침 시간에는 내 짐을 얼마 추려 박스에 싸서는 교실 한 켠에 놓아두기도 했다. 어떤 아이가 "선생님 왜 짐 싸세요? 어디 가세요?"라고 물으면 "나중에 다 얘기해 줄게..." 하면서 애잔한 눈빛을 연출했다. 나의 발연기에도 불구하고 일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 며칠 이렇게 밑밥을 깔았더니 꽤 많은 아이들이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나 봐...'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성공을 예감하고는 하마터면 미소를 들킬 뻔했다. 급히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여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입술 물며 참았다. 그렇게 빌드업의 일주일이 흘렀다.




대망의 만우절 당일. 아이들은 만우절답게 등교하면서부터 나에게 이런저런 뻥을 쳤다. 나는 일부러 희미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힘없이 답했다. 모든 아이들이 등교한 후 나는 대망의 작전을 개시하였다. 아이들을 주목시키고는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없이 미리 만들어둔 통신문을 돌렸다. 종이를 받아 든 아이들은 엄숙한 분위기 때문인지 말 한마디 없이 숨죽이며 내용을 읽었다. 이내 그중 먼저 읽은 아이가 소리쳤다.


< 그날 나누어준 통신문 내용 일부. 맨 앞자를 따면 '선생님이 가긴 어딜가'입니다.  >


"선생님, 우리 반 떠나세요?????"


아직 미처 내용을 다 읽지 못한 아이들까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아이들이 수군수군 웅성거리는 가운데 똘똘한 한 녀석이 말했다.


"오늘 만우절이라서 선생님이 뻥 치는 거 아니야?"


그래. 똑똑하구나. 너만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구나. 맞아. 뻥이란다. 아, 이제 다 끝난 건가? 이렇게 파하하 웃고 끝나는 걸까 싶었는데 웬걸. 다른 아이들 여럿이 화를 냈다.


"선생님이 그런 걸로 거짓말할 분이야? 거짓말할 게 따로 있지!"

"떠나신다는 분한테 그게 할 말이야? 너 선생님한테 사과해!!"


자기들끼리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그간의 내 행동을 유심히 보았던 아이들이 입술을 뗐다.


"맞아. 선생님 얼마 전부터 짐 정리하셨어."

"선생님이 옆반 선생님이랑 심각하게 얘기하던데 그게 이거 때문인가 봐."

"그리고 여기 통신문에 학교 마크 찍혀 있잖아. 이런 거 막 위조하면 안 될걸. 이거 진짜 같은데."


그러더니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렇다. 아이들이 진짜 내가 떠나는 줄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이 울길래 이쯤에서 장난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말하려는데 아차. 맨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우는 확신의 F 유형이다. 꺼이꺼이 우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말을 하다가 곧장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선생님이 사실은.... 흑흑"


여기서 펑!!! 아이들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내가 울먹거리자 아이들이 일제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 한 달간 볼 수 없었던 서로의 얼굴을 그날 보았다. 아이들이 너무 울었다. 아차, 이걸 어쩌지. 어서 이 사단을 끝내기 위해 "얘들아, 진정해. 아니야, 아니야!"를 연신 말해보았지만 이미 궤도에 오른 울음은 금방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때 우리 반 회장이 소리쳤다.


"야!! 선생님이 할 말 있으시다잖아!!"


아이들은 아직 울음 끝이 남아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까. 나는 곧장 사실을 말했다. 선생님 어디 안 간다고. 만우절 날 추억을 만들어보려고 장난친 거라고. 선생님이 너희들 울려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이제 속았다는 분함에 야유 하거나 화를 내겠지? 그런데 나는 이번에도 틀렸다. 내 말을 듣고 아이들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교실이 떠나가라 엉엉 우는 소리에 옆 반 아이들까지 우리 반 앞에 떼로 모여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어디 안 간다는 소리에 안도해서 울 뿐이었다. 내 마음보다 아이들의 마음이 훨씬 깊었구나. 아이들의 마음이 와닿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도 같이 엉엉 울었다.



애들은 한참을 더 울다가 진정했다. 나도 울음을 멈추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에 그렸던 아이라인이 온데간데 없어져 있었다. 아, 전혀 모르던 우리가 한 달 동안 정이 참 깊이도 들었구나. 고작 한 달 만난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마음을 줄까. 


< 출처 : adobe stock >


나는 그 해 이후로는 그런 장난을 그만두었다. 한 번으로 족한 장난이었다. 매년 만우절을 맞을 때면 나는 그 해 아이들의 눈물을 기억한다. 팍팍한 교직생활에서 마음이 지칠 때면 그 해 만우절 그날을 떠올린다. 방울방울 떨어지던 아이들의 눈물, 훌쩍이는 소리, 교실의 공기... 선생질을 업으로 삼고 살며 때로 마음이 꺾이고 메마를 때, 기억을 퍼올리면 마음이 언제나 촉촉해진다. 준 것 이상으로 더 많이 사랑을 받은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니까. 울어줘서 고마워, 울려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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