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Feb 23. 2024

꽃다발에 얽힌 무례함의 사건

처음 가보는 재래시장 지하상가에서 길을 헤멨다. 우리 둘째의 유치원 졸업 꽃다발을 사기 위해서다. 무려 4명의 행인에게 길을 물어물어 꽃집 구역을 겨우 찾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가성비 좋다는 꽃집을 검색한 것이다. 월급 말곤 다 오르는 요즘 같은 때 꽃값도 만만찮다. 길찾기 앱도 안 되는 지하상가는 나 같은 길치에겐 쥐약인 곳이지만 엄마는 강한 법이니까!


리뷰에서 본 인상 좋은 사장님네 꽃집 앞에 멈춰 섰다. 사장님이 먼저 온 손님의 꽃다발을 한참 만드는 사이 옆집 사장님이 말을 건다.


"꽃다발 사러 오셨어요?"

"아... 네."

"이 꽃다발 어때요? 이것도 예쁘죠?"


그렇다. 옆집 사장님의 플러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사장님네 꽃도 나름대로 예쁘네. 아까 리뷰에서 본 꽃집에는 나 말고도 손님이 두 명이 더 있고 이 집은 손님이 없다. 그래, 그냥 여기서 살까?




사장님이 보여준 꽃다발 두 개의 가격을 물어보는 사이 나는 이 집 손님이 되었다. 사장님은 내 팔을 살짝 잡고는 자기 가게 앞으로 나를 갖다 놓았다. 나는 첫 번째 샘플 꽃다발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이러는 거 아닌가.


"아, 그 꽃다발은 지금 꽃이 다 나가서 안되고 다른 스타일로 해드릴게요."


엥? 뭐라고? 아... 여기서 끊고 옆집으로 가서 꽃을 사기엔 나는 너무 물러터진 사람이다. 그럼 샘플 꽃다발대로는 아니더라도 둘째가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꽃다발을 꾸며 줄 것을 요청했다. 사장님은 핑크색으로 하면 무슨 무슨 꽃을 더해야 예쁘니까 5천 원이 더 추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그냥 처음 가격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곧 이런저런 꽃을 엮어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분주히 꽃다발을 만들다 멈추고 사장님이 말을 건넨다.


"아이가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한 번 밖에 없는 졸업식에 그 정도는 써도 되는데."

"네? 아뇨. 저희 아이는 유치원 생이에요."


유치원 졸업식 꽃을 사러 왔다고, 아이가 오만 것에 핑크핑크한 것만 찾아서 핑크 꽃다발로 사려고 한다고 방금 얘기했는데 왜 대학교 졸업 이야기를 하는 거지? 몇 초 지난 뒤에 나는 알았다. 사장님이 5천 원 더 받지 못한 분을 은근히 풀고 있다는 것을.


이내 꽃다발은 완성되었다. 꽃다발은 괜찮았다. 꽃다발이 참 예쁘다는 말과 함께 결제카드를 건넸다. 카드는 안되고 이체만 된단다. 흔쾌히 이체를 하고는 돌아섰다. 꽃다발이 예쁘다는 말에 무반응이던 사장님은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에도 말이 없다.




출구로 올라오며 꽃다발을 바라봤다. 우리 둘째 얼굴마냥 예쁜 꽃들이다. 사장님의 무례가 묻어나기엔 꽃은 너무도 환하고 너무도 예쁘다. 꽃은 그만큼 신비로운 피조물이다. 꽃을 매일 접하면서도 팍팍하게 살고 있는 사장님을 연민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기뻤다. 사장님의 무례를 단순한 무례로 끝맺을 수 있어서.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저러는 거지?'와 같은 생각을 덧붙이지 않을 수 있어서. 벌어진 상황을 개인적으로 해석하느라 괴로움을 자청하는 일이 우리 삶엔 얼마나 빈번하던가.


나는 피식 웃었다.

꽃을 보고 좋아서 날뛸 둘째를 떠올리며 피식.

상황 그 너머로 넘어가지 않고 멈출 만큼 단단해진 나를 생각하며 피식.

나는 피식 거리며 차에 몸을 실었다.


(출처 : adobe sto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