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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김미 Jun 17. 2024

외국에 살지만 한식은 먹고 싶어

서로의 부엌 독립을 위하여

27살에 외국인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한식을 즐겨 먹었고, 요리는 주로 내 담당이었다. 요리를 하기에 앞서 최소 2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알아야 한다. 요즘은 워낙 유튜브와 블로그에 정리가 되어있어서 어떤 요리든 집에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요리 중에 화면을 정지하고 스크롤을 내리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었다. 그래서 자주 하는 요리들을 레시피 북에 정리하기로 했다.  달 동안 다양한 레시피를 기록했.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레시피 북을 들여다보며 빠르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나만 이 레시피를 알아본다는 건, 독박 요리를 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나른한 일요일 점심, 생리통이 심해서 약을 한 알 먹고 소파에 누웠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던 중에 그가 한국에서 먹었던 감자짜글이 얘기를 했다. '오늘 점심은 감자짜글이 먹을까?'


침이 고이는 메뉴였다. 사실 한식당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매 식사마다 한식을 즐겨 먹는 건 우리의 피, 땀, 그리고 눈물이 있기에 가능하다. 2주에 한 번씩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인마트를 찾아가고, 다이소 가방이 터질 만큼 재료를 담아 온 뒤, 레시피를 보며 요리하다 보면 그날 저녁이 완성된다. 가끔 남편이 한식 요리를 할 때도 있다. 옆에서 어떤 야채가 필요한지, 무슨 소스를 넣어야 하는지 마치 통역사처럼 얘기해 주는 내가 옆에 있다면 말이다.


약 효과가 들 즈음에 노트북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노션(메모장)열어서 레시피북의 요리법을 영어로 써 내려갔다. 첫 번째 페이지의 제목은 물론 감자짜글이였다. 이렇게 영어로 레시피를 쓴 이유는 단 하나, 내 도움 없이도 남편이 한식을 요리할 수 있도록 부엌 독립을 돕는 것이다.




독일에 이민 온 지 딱 1년 만에 한국에 갔다. 60대로 접어든 부모님은 늘 한결같았다. 아빠는 아침에 출근하시고, 엄마는 아침식사를 준비하셨다. 우리 4남매가 이 집에서 독립하기까지 엄마는 3끼를 본인손으로 준비하셨다. 요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1끼 식사를 준비하는 건 말 못 할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재료 준비와 손질부터 여러 반찬들 준비까지. 물론 한국에는 외식과 배달문화가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밖에서 먹는 음식은 건강하지 않다는 엄마의 철학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 식문화 시스템을 즐겨 쓰지 않았다.


독일에 온 후, 배달의 민족과 단절된 채 내 손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식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1인당 개인 밥과 국을 퍼야 고, 메인 요리 그리고 여러 반찬들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외국인들이 한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식탁 위에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반찬 가짓수 때문이다. 그런 식사를 매일 최소 2끼 이상 준비한다는 건 하루의 노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알람과 같다. 약 30년 이상 한 가정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식사를 준비해 본 사람은 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주말 출근, 수당 없는 야근, 그리고 퇴근 없는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님의 신혼생활은 20세기 끝무렵이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는 전업 주부가 되셨고, 신혼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임신과 육아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모든 요리도 도맡아 하셨을 것이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요리법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시절엔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집안일을 하는  당연한 이치였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1인가구는 늘어나고 있다. 맞벌이도 당연한 추세이다. 드디어 내 밥 정도는 간단히 차려먹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요리하는 남자가 낯설지 않고, 결혼 후 일하는 여자도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가 되었다. 부부가 퇴근 후, 밀키트 또는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식사를 해결하는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었다. 이민생활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리고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정착한 그날부터, 우리 삶의 방식은 오히려 부모님 세대와 유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이 요리를 할 줄 모르면 아내의 독박 요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50대 또는 60대가 되어서도 우리 집 부엌이 나만의 소유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녁마다 밥을 차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세워두는 것이다.


서로의 고된 날을 위해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남편의 짜글이 실력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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