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 1년 만에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국인들로 꽉 찬 비행기 안에서는 모두 한 마음으로 같은 메뉴를 선택했다. 비빔밥은 금세 동이 났고, 끝 줄 어딘가에 앉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중식을 먹었다. 1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비행기 밖을 빠져나왔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불필요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반가움이 가득 차올랐다.
한국에 도착한 순간 18일의 행복 여정이 시작되었다. 유튜브를 보며낭비할 시간도, SNS를 기웃거릴 여유도 없었다. 이민 오기 전누렸던일상은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밥 먹기, 친구들과 수다 떨기,다 같이 찜질방 가기. 이 모든 건 1년의 기다림 끝에 보내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어느덧 독일행 비행기 안이었다. 창문에는 부모님의 눈물 참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두 번째 작별인데도 슬픔에는 면역력이 없었다.
14시간의 비행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마주한 독일은 건조한 공기마저 익숙했다. 왠지 와야 할 곳에 돌아온 기분이랄까. 귓가에 들리는 독일어도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익숙함이 더해진 덕분에 발걸음도 덩달아 씩씩해졌다.
돌아오자마자 큰 일정이 2개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일 자리를 소개해주는 아겐 투어에서 구직 상담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김나지움에서 비공식 면접이 있었다. 아겐 투어는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있다면 인적 사항을 등록하고 구직 상담을 통해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곳이다. 남편 직장 동료의 아내도 이탈리아에서 건축가로 일했던 경력으로 아겐투어에서 소개받은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아겐 투어에 도착한 날, 영어로 상담을 도와줄 수 있는 직원분이 함께 계셨다. 한참 모니터를 보더니 독일에서 일하려면 독일어부터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역시나 예상했던 결과였다.
두 번째 일정은 김나지움에서 비공식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취업이 아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다.알고 보니 독일 고등학교 최초로 제2외국어 의무교육에 한국어를 채택했다고 한다.
지난 5월, 그 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곧바로 학교 비서실에 메일을 보냈고, 여러 차례 연락을 하며 비공식 면접을 보자는 회신을 받았다.
면접이 있는 날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그리고 그들의 비서와 함께 테이블에 모였다. 메일 한 통으로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교사로 채용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독일어로 의사소통만 된다면 영어 교사든 한국어 교사든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최소한 독일어 B1(중급) 이상의 레벨을 받은 뒤 다시 메일을 주기로 하고 학교를 나섰다.
비 영어권 국가라도 영어만으로 당차게 살 줄 알았다. 비록 소도시지만 다들 어느 정도 영어를 하지 않을까 착각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른 채 무작정 지내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한 나라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전통의 뿌리는 결국 서로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고유한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이민을 결심한 순간부터 언어공부에 매진해야 했다. '다른 길이 있겠지. 독일어를 배우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겠지.' 한참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민생활 중 각자가 처한 환경과 겪는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된 분모가 하나 있다. 그 나라의 언어를 알면, 눈이 떠지고 귀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지낸 지 1년이 지나가는 시점, 핑곗거리가 사라지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몇 년을 살든한국에 돌아가든 그건 이후에 결정할 문제이고, 현재 나는 독일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어를 공부해야 한다.
외국에 살려면 그 나라 언어가 필수일까?100%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그 나라의 언어를 잘할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이고새로운 만남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