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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김미 Jun 14. 2024

이런 게 이민이라면 한 번으로 충분해

왜 사서 고생을 하니

석사를 마치고 취업준비가 한창이던 그에게 합격 소식이 들려온 날,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서둘러 이사준비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기간까지 합치면 10년간 한 분야에 커리어를 쌓아온 나의 노력에는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3년 6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타국살이가 처음도 아닌데 이민 결정을 하고 와서였을까. 왠지 모를 불안과 긴장이 엄습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리. 우리가 내린 결정이었기에 불쑥 찾아오는 아쉬움은 속으로 달랠 뿐이었다.




도착한 집에는 황당하게도 싱크대가 없었다. 싱크대를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발품을 팔았지만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한 달 내내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이동식 인덕션에 의존해서 끼니를 해결했다.

온라인으로 주문 한 부엌 싱크대와 오븐이 도착한 날 주차장에 큼직한 박스들을 두고 떠나는 배달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이걸 혼자 다 옮기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짐들을 엘리베이터에 싣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나른 하루였다.

남편은 퇴근 후 공구세트와 톱을 사 며칠 내내 싱크대를 만들었다. 널찍한 나무판에 인덕션이 들어갈 네모난 구멍 그리고 수도꼭지를 넣을 동그란 구멍을 위해  발코니와 집안에 톱밥이 날리기 시작했다. 낱개로 흩어져있던 나무조각들은 우여곡절 끝에 싱크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보냈던 이삿짐들이 약속한 3개월 만에 도착했다. 당근에 불필요한 것들을 팔고, 꼭 필요한 가구와 짐만 보냈는데도 거실에는 50개의 종이 박스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부피를 자치하는 가구부터 조립하고, 3개월 간 바닥신세였던 옷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모든 짐정리를 마친 후, 침대에 눕는 순간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가구로 채워진 침실 안에서 모든 게 그대로인 듯 보였지만 그대로인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민 생활에서 발목을 잡는 것은 역시 거주허가증이었다. 무비자 90일이 지나고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거주허가증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비자에 관해 블로그에 적혀있던 악명들은 거의 사실이었다.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고, 직접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민청 직원들이다. 동서남북 어디든 새로운 국경이 나오는 유럽 한복판에서 거주허가증을 기다리는 동안 독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7월에 시작한 여정은 1월쯤 되어야 끝이 보였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이민청 직원들은 쉬있지 않았다. 하루동안 일들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한 후 칼퇴근을 했을 뿐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워킹 문화이다.




한국에서 누렸던 편리함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다. 워라밸을 지켜주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할수록 소비자들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소비자들을 위한 세상에서는 노동력을 갈아 만들어진 편리함이 보장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흑백논리처럼 판단하기 어렵다.


만약 병원 방문을 해도 진찰을 받기 어렵고, 응급실에 가도 적당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료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편을 느껴야 한다. 서류 한 장을 위해 복잡한 사전 절차가 필요하다면 이 또한 많은 이들의 원성을 살 것이다.


제삼자 입장에서 한국을 바라본다면,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할만한 좋은 시스템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민생활 1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였다. 거처와 상관없이 버티고 견뎌야  일은 늘 곁에 공존한다. 한국에서 정신없이 바쁜 날엔 여유로운 해외에 가서 살고 싶었다. 막상 외국에 오니 가족들이 보고 싶고 편리했던 한국이 그리워진다. 어디를 가야 잘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해도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청개구리 심보로 넋두리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웰컴 투 아워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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