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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김미 Jun 12. 2024

프롤로그 : 무미건조하지만 분투한 일상

지난날들이 그리운 걸까

따뜻한 차를 마시려고 책상에 앉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나뭇잎이 부딪히는 잎사귀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이곳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독일에서 보내는 시간은 간이 안 맞는 곰탕처럼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기한 일상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잘 살아보겠노라고 보이지 않는 분투한 일상이 시작된다.


테라스 문에서 바람소리가 서걱서걱 들린다. 시공간 속에 사람이 부재되니 이리 심심할 수가. 사람이 그리운 날에는 카톡을 열어 생각나는 아무에게나 안부인사를 전한다. 답장이 울리는 알람은 배달 초인종소리만큼이나 반갑다. 이번에도 다들 잘 지내는지, 적응은 잘했는지 물어본다. 대답은 늘 한결같다.


'한국 가고 싶어. 다들 보고 싶네'




10월이 되니 서서히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보온이 잘 된 밥통처럼 집 안이 따뜻한 공기로 포근하게 데워졌다. 독일에 온 지 4개월째가 될 무렵, 베를린 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의 긴장한 모습, 한국과 다른 풍경에 호기심 어린 눈빛, 외로움에 사무쳐 눈물을 쏟은 날도 모두 지나갔다. 인생에 벽돌을 쌓듯, 튼튼한 벽돌과 곰팡이 핀 벽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여유는 없지만 보람은 있었다. 자연의 소리보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익숙했고, 건물 안에 갇혀 매일같이 종이를 토해내는 프린터기를 동무 삼았다. 사색을 하며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당장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치웠다. 퇴근 후 절벽을 타고 날아온 메아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오늘도 잘했어. 내일은 더 괜찮을 거야'


대한한국은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다. 열심히 일하면 응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시간을 내주면 통장에 돈이 입금된다. 물약을 사서 경험치를 올리듯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면 시간당 보수가 올라갈 기회가 있다. 돈을 열심히 벌 수 있다는 건 가진 시간과 능력을 경제적인 면에서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검게 그을린 심지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열정은 어느덧 사그라지고 있었다.




청량한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느릿느릿 붉은 해가 떠올랐다. 도 나도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올해는 어떤 해가 될까. 오랫동안 주저하던 고민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이민을 결심한 건 20대 끝자락에 내던진 도전이었을까

도망이었을까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좋은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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