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엄마의 고백

by 리치

결혼 전, 남자를 만나면 내가 곧잘 묻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달리기 잘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남자 유형 중 하나가
달리기를 잘하는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다.

여고 시절 체육 시간.
내 차례가 다가오면 친구들은 먼저 웃을 준비를 했다.

“은영이 뛴다.”

아이들은 내 달리기 폼을 흉내 내며 말했다.

“넌 무용을 하니? 그 긴 다리가 아깝다.”


운동신경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공도 곧잘 던졌고, 뜀틀도 넘었다.
그런데 달리기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속도가 붙지 않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구차하고 미안한 기억 하나가 있다.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나는 늘 달리기 시합에서 꼴찌였다.
장화를 신었다 벗고, 굴렀다 일어나는 그 복잡한 경기에서도 결과는 늘 같았다.

공책을 상품으로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아이들이 부러웠다.

공책이 부러운 게 아니었다. 나도 그 서열 안에 한 번쯤 끼고 싶었다.

운동회 날,

아버지는 육성회장 직함으로 교장 선생님 옆에 앉아 내가 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아버지 앞에서 또 꼴찌를 한다는 건 내 어린 자존심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반칙을 했다.

장화를 신는 구간에서 나와 꼴찌를 다투던 친구의 팔을 붙잡았다.
친구가 장화를 신지 못한 사이, 나는 먼저 뛰었다.

그날 나는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하지만 저녁에 돌아온 아버지는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며 나를 나무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장선생님 바로 옆에 앉으셨던 아버지가 딸의 반칙을 보는 심정이 난감하셨을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팔에 붙잡혀 꼴찌가 되었을 그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오래도록 사과해 왔다.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던 일곱 살 때.
엄마들이 참여하는 운동회 달리기에서 나는 또다시 꼴찌를 했다.

선물을 받아 든 다른 엄마들 뒤로 빈손으로 돌아오던 나를 보며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 원망 섞인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흑!

그날 아이가 울었던 건 엄마가 못 달려서가 아니라 엄마가 서열 밖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내게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 딸이 달리기 계주 선수로 뽑혔다는 것이다.

운동회 날, 앙팡지게 달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내 딸이에요! 내 딸!”

세상에, 내가 낳은 아이가 저렇게 날쌔게 달린다니.


그날 나는 알았다.
내가 평생 이기고 싶었던 건 달리기가 아니라 ‘뒤에 남겨진 기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계주 바통을 쥔 딸아이를 보며 나는 비로소 내 어린 날의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여전히 천천히 뛴다.

하지만 내 딸은 망설임 없이 트랙을 질주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끝내 뛰어보지 못한 속도를 대신 살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내 어린 날의 ‘천추의 한’은 조용히 풀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끌리지만, 이제는 안다.

트랙 위를 질주하는 딸의 앙팡진 다리도, 무용을 하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만의 세상을 밟아나가는 나의 느린 속도도 모두 사랑스럽다는 것을.

뒤에 남겨진 기분은 더 이상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속도로 자신의 트랙을 완성해 나가고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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