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와 나와 인연을 맺은 시기는 남편과 주말부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 생후 6개월 때의 로리 >
대학생이 된 딸을 서울에 혼자 두고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내려갈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5년간 애지중지 키우던 '새롬이'를 두고 딸과 나는 서로 양보할 수 없다는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한 마리를 더 입양하기로 합의했다.
새롬이는 내가, 새로 온 아이는 딸이 맡기로. 그 아이가 바로 '로리'였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막상 집에 온 로리는 장염에 걸려 있었다.
생후 두 달,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작고 가냘픈 몸이었다.
단골 동물병원 원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입양한 곳에 가서 물러달라고 하세요. 어머니가 돌보다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더 힘드실 겁니다.”
그 순간, 애견센터 구석에서 기운 없이 웅크리고 있던 로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이 아이를 돌려주면, 병도 못 고치고 그냥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는 차마 그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네 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이고, 새벽에도 수시로 깨어 차가워진 아이의 배를 어루만졌다.
내 정성이 통한 것일까. 로리는 기적처럼 고비를 넘기고 생후 여섯 달을 맞이했다.
병간호를 하며 이미 로리와 한 몸처럼 마음이 묶여버린 나를 보고, 딸은 결국 로리를 내게 맡겼다.
그렇게 로리는 내 진짜 '아픈 손가락'이자 자식이 되었다.
하지만 병약한 로리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깨 수술만 세 번을 치러야 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전국을 뒤져 명의를 찾아냈고,
다행히 네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첫 수술은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면회 시간, 마취가 채 풀리지 않아 멍한 눈으로 신음하며 눈물을 흘리던 로리.
그 작은 몸을 붙들고 나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다.
정작 로리는 단 한 번도 짜증 낸 적 없이 그 모진 통증을 묵묵히 견뎌냈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반려견 유모차를 사서 산책을 다녔다.
누군가는 부러운 듯, 누군가는 비아냥거리며 한 마디씩 던졌다.
“개 팔자가 상팔자네. 사람 팔자보다 낫다.”
꼭 그렇게 뾰족한 말을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유모차를 더 단단히 쥐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로리는 한쪽 팔이 짧아 조금 절뚝이며 걸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어라, 쟤 절뚝거리네?” “다리병신이네.”
지금의 나였다면 당당히 따졌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얼굴을 붉힌 채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집에 돌아와 괜히 로리를 더 오래, 더 깊이 품에 안았다.
< 세 번째 어깨수술로 절단을 면했던 로리는 평생을 철심이 박힌 어깨로 살았다 >
결국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로리를 위해, 남편을 설득해 조용한 산책로가 있는 동네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때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나에게는 자식 같은 존재인 강아지지만,
실제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더 시리고 외로울까.
타인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그들의 하루를 얼마나 처참히 무너뜨릴까.
한쪽 팔이 짧은 로리는 산책할 때면 그 누구보다 기쁘게 뛰었다.
아픈 다리로도 늘 나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왔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배웠다.
사랑은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기꺼이 끌어안는 순간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을.
절뚝이던 그 가녀린 네 발이, 실은 내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그렇게 17년을 내 곁에서 머물다 떠나간 로리. 안아주고 싶다.
그 예쁜 눈망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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