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전화 이후,
그의 적극적이면서도 조금은 어이없는 발상이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가 새우깡을 내밀던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현우라는 그 애가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왜 내게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것이냐는 나의 질문에,
현우는 화사랑에서 빈자리를 찾던
내 모습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흰 옷을 입은 내가 마치
“활짝 뛰어오른 한 마리의 은어처럼 빛났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의 과분한 찬사가 쑥스러워 짐짓 모른 척했지만,
누군가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빛나는 존재로 담겨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선을 그었다.
“나, 사귀는 남자친구 있어.”
현우는 맑지만 깊은 눈동자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6월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무렵 항공사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달여에 걸친 고된 채용 과정을 통과했고,
10월 말부터 입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3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정식 비행을 시작하던 어느 날,
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승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는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스튜어디스 제복이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그 시절 승무원 대기실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외부에서 승무원 이름을 대고 전화를 걸면
대기실로 연결해 주기도 했고,
자리에 없으면 메모를 남겨주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5박 6일의 하와이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긴 비행의 피로에 지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입국장을 나서던 길,
구두 굽 소리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그 순간
입국장의 환한 조명이
늦은 귀가를 맞이하는 사람처럼 나를 향해 조용히 빛나고 있는 듯 보였다ㆍ
그 조명아래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ㆍ
현우였다.
입국장 한편에서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는 그를 발견했을 때,
나는 당황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밀어내려 애썼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기내에 잔잔히 울려 퍼지던
"웰컴 투 마이월드"의 선율과
인파를 헤치고 걸어 나오던 내 푸른 망토 자락.
그 시청각적인 잔상들은 '화사랑의 은어'에 이어,
현우가' 나'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그려내는
또 하나의 선명한 문장이 되었다.
※ P.S..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지금의 잣대로 보면,
1980년대의 풍경은 큰 시대적 차이를 보입니다.
가슴에 달린 승무원 명찰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연락처를 알아낼 유일한 단서가 되기도 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입국장#승무원#제복#은어#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