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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내 마음의 단어들

아픔은 견디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by 부엄쓰c


최선을 다해 아픈 나를 지키는 법


나는 아직까지도 몸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게 어렵다.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항상 습관처럼 “괜찮아”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아픔을 견디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얼마 전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 직후엔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며칠 지나자 허리에 묵직한 통증이 찾아왔다. 걱정 어린 댓글을 남겨주신 작가님들의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너무 걱정을 끼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들었다. 그래서 또다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치료 잘 받을게요” 라고 말하며, 아픔 대신 걱정끼쳐서 ‘미안함’이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 마음으로 무리하게 회사에 출근했지만, 허리는 하루 종일 더 아팠고, 내 얼굴을 보던 동료들이 걱정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병원부터 가보세요. 쉬어야 빨리 나아요.”


늘 듣던 말인데, 그날따라 그 말이 깊숙이 가슴에 와 닿았다.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사진을 찍었다. 의사가 MRI를 찍어보겠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일단 일주일 정도 약 먹고 물리치료 받아보고 그래도 아프면 찍을게요”라고 말했다. 병원을 나오면서도, 나는 계속 ‘견디기’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붙잡고 있었던 걸까.


다음 날 아침, 다시 출근했다. 이번엔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왔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덜덜 떨릴 만큼의 통증이었다. 다급히 퇴근해서 약을 먹고 누웠다. 5시간쯤 지나니 통증은 다행히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그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던 내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허리가 아파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아픔은 외면했어도 아이의 아픔은 절대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회사에 어렵게 휴가를 요청했다. 나의 망설임을 본 리더는 담담하게 말했다.


“쉴 때 푹 쉬어야 빨리 낫죠. 3일 정도 휴가 내고 충분히 쉬는 게 어떨까요?”


그 순간, 나는 가슴속이 먹먹해졌다. 리더의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마음의 단어들이었다.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늘 나를 붙잡던 마음, 내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갑자기 쉬게 되어 주변에 끼치는 미안함… 그런 나를 위한 리더의 배려 덕분에 ‘쉬어도 괜찮다’라는 단어가 편안히 자리 잡았다.


돌아보니 내가 지금까지 내 마음에 새겨둔 단어는 늘 ‘미안함’과 ‘견디기’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단어들을 하나씩 지우고 새로운 마음의 단어들을 써내려가고 싶다.


‘아픔’은 참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쉬는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그리고 ‘미안함’보다는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


나는 앞으로도 아픔을 참으려 할지 모르고, 여전히 습관처럼 “괜찮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멈추게 해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이 전해주는 배려와 따뜻한 말들로 나는 내 마음의 단어들을 천천히 다시 써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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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찾은 단어들


요즘 아이와 나는 병원에 다니느라 자주 버스를 탄다. 교통사고 이후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게 낯설고 불편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마저 버겁고 힘들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내 아픔과 아이의 아픔이 겹쳐서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다림의 순간들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짧은 시간은, 내가 잊고 살아왔던 ‘천천히’라는 단어를 내 마음으로 데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 안에서 아이와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어느 날 문득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가 학창 시절 버스를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엔 지루하고 답답했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 시간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쁜 일상에 잊고 살았던 그 여유의 순간을 다시금 마주하면서 나는 다시 내 마음에 새로운 단어를 써 내려갔다.


‘가끔은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


버스가 천천히 정류장에 멈추자, 아이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속에 새로이 써내려간 단어들을 천천히 되새겼다.


‘아픔’은 견디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고,‘쉬는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그리고 ‘미안함’보다는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


나는 이제야 그 단어들을 천천히 다시 써가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작가의 말]

걱정해 주신 작가님들 덕분에 제가 병원에 더 빠르게 가서 진료를 받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사실 습관처럼 괜찮다고 했던 제가 이렇게 빠르게 병원에 다녀오고 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작가님들의 따뜻한 댓글 덕분이었답니다.


지난 글에 남겨주신 댓글처럼, 아픔을 참는 대신 인정하고 치료를 잘 받으라는 말씀을 그대로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또 천천히 회복하라는 말씀에 따라, 몸과 마음을 편안히 돌보려고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희 둘 다 꼭 잘 회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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