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 앞에서

by 부엄쓰c

아픔이라는 것은 때때로 너무 모호한 형태로 찾아와,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 앞에 매번 명확히 답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난 여름부터 내 몸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평소엔 명치 뒤쪽 어딘가가 무언가에 눌리는 듯한 희미한 불편함일 뿐이어서, 참을 수 있는 정도였기에 무심히 넘기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밤이 되면 그 고통은 갑자기 모습을 바꾸어 나를 덮쳤고, 그때마다 나는 몸을 펴고 눕는 것조차 숨이 막힐 정도로 버거워 허리를 앞으로 깊숙이 구부린 채 간신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


2월의 어느 밤에도 고통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날 밤 열 시 무렵부터 시작된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집요하고 격렬하게 밀려들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는 아직 편히 앉아 쉴 소파도 마련하지 못한 터였다. 바닥에 앉아 어린아이가 말타기 놀이를 하듯 어색하게 몸을 굽힌 자세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해지는 각도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렇게 고통을 견디다 약을 먹고 잠시 잠이 들고, 다시 새벽 무렵 또 한 번 밀려오는 통증에 깨어 약을 먹기를 반복하며 긴 밤을 건너야 했다.


그렇게 길고 긴 밤을 지나 아침이 찾아왔을 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게 밝아졌지만 내 몸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해안처럼 지쳐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병원을 찾기로 했다. 가까운 동네 병원을 갈지, 곧바로 큰 대학병원을 찾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건강검진 CD와 판독 결과지를 챙겨 이사 온 동네에서 평판이 좋다는 내과를 방문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X-ray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위염이거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가벼운 진단을 받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화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더니 낮지만 무게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이 좀 부어있는 상태네요.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급한 상황은 아닙니다만, 가끔씩 건강검진 결과는 이상이 없다고 나왔는데도 암이 숨어 있다가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 교수님께 상세한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깜짝 놀라 “네? 정말요? 암이요?” 이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의 마지막 한 문장이 끝나는 순간, 내 가슴은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것은 명확한 진단도 아니었고 확정된 결과도 아니었지만, 그저 단지 ‘암’이라는 가능성이 내 삶을 가로질러 들어온 것만으로도 내 안에 있던 견고한 믿음 하나가 조용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접수대에서 보호자 연락처를 적으라는 간단한 요청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한참을 망설였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아직 복잡했고, 갈등을 빚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번호를 선뜻 적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예전에 사용하던 전남편의 전화번호를 적어 내밀었다가, 접수 직원이 번호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 그 번호가 이미 아무 의미 없는 과거의 숫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수정했지만, 그 순간의 당혹감이 내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만들었다.


응급실 의자에 앉아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불안한 시선들이 뒤섞인 채 내 주변을 맴돌았다. 119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과 화면에서 깜빡이는 안내 화면, 그리고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 역시 불안이 증폭되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간단한 진단을 듣고 싶다는 소망 사이에서 나는 초조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그날은 원하는 검사를 받을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막막했다. 다행히 며칠 후 상담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더 큰 병원의 예약을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가깝다고 느끼는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병은 많이 알리라고 했던가. 미처 내가 모르거나 놓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안부를 신경써주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내가 많이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걱정과 조언의 말들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안도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이었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이 모호한 고통의 신호가 정말로 긴급한 것이었는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불안과 감사가 동시에 밀려오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질문 앞에 멈추었다.


내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면, 나는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의 무게가 버거워 몇 번이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내 마음을 가장 먼저 가득 채운 건 삶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 충분히 즐기지 못한 시간들, 더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곁에 없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믿음도 함께 따라왔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걸어두었던 많은 제약들을 조금씩 풀어보기로 했다. 게임도, 핸드폰도, 노트북도 완벽히 통제하기보다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패와 실수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아이가 나보다 먼저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히려 회사 일에는 더 몰두하게 되었다. 잡념 없이 업무에 집중할 때마다 마음이 신기하게도 안정되었고, 아무 일도 없는 듯 평범하게 돌아가는 일상이 나를 붙들어 주는 유일한 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주말만큼은 온전히 쉬기로 했다. 아이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엄마였으니까.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 하나가 내 삶에 조용히 들어왔다. 암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울리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 앞에서 나는 이제 더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친절하게, 좀 더 오래 머물러 내 몸과 마음을 돌보기로 했다.


결국 중요한 건 진단이나 확정이 아니라,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의 가능성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이 고요한 혼란 속에서 내 삶을 더 진지하게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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