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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처드킴 Jun 09. 2022

시드니 작당모의

창업을 비영리로 한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결국은 도망치듯이 유스호스텔을 빠져나와 비영리인 NGO를 창업하며, 남들이 모두 한다는 스타트업을 시작하였다. 적당한 사무실을 얻은 것도 아니어서, 몇 명이 노트북만 들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만나고, 비가 오면 남의 사무실에서 일 좀 봐주는 척 하면서 우리 일을 하며 지내는데, 이건 무슨 남파된 간첩도 아니고, 모양새가 좀 그렇다. 막상 하는 일은 너무 한가하여, 사실 글로벌 자원봉사 캠프 기획하는 것은 하루에 삼십분 정도이고, 그것보다 우리들의 미션이나 기관소개서에 자꾸 집착하게 되었는데 아마 별 볼일 없는 우리를 포장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나 보다. 그리고 비전이니 핵심가치니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연구하다보니, 몇 십개의 단어가 우리들 입에 자꾸 오르내려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이 여행, 자원봉사 그리고 꿈 등이었는데, 이거를 그냥 영문으로 트레블 볼룬티어 드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각 단어의 뒤에다가 떠나다, 자원봉사 하다, 꿈을 가지다 등의 동사를 붙이기도 하고 그랬다. 어쨌든 이렇게 어영부영 있다 보니, 지인들에게 가끔 찾아오시어, 격려금을 주시기도 하고, 밥과 술을 사주시기도 하던 중, 어느 분이 우리들의 로고로 만들어서 명함을 주겠다고 충격적인 제안을 하셨다. 

“명함이라, 가질수만 있다면 너무 가슴 설레는 물건일 것이야” 

문제는 우리들의 이름이었다. 우선 위에 언급된 단어를 모두 붙여 보았다. 

“트레블 볼룬티어 드림은 약간 긴 것 같은데?, 그냥 트레블 드림으로 할까? 아니면 영어약자로 써서 티브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강서구의 어느 NGO 사무실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사하려고 면접 보러온 키 큰 키다리 여자청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작년에 아이슬란드 및 유럽 여러 국가의 자원봉사 캠프를 거의 휩쓸고 돌아온 여자청년이었다. 또한, 그걸로 모자라서 본인의 후기를 무슨 자서전같이 100페이지 넘게 남겼는데, 작고하신 김정일 위원장도 울고 갈 지겨운 자서전급 역사서 같은 여자청년 기행기다. 이 여자청년은 H로 생계를 위하여 화장품 알바등으로 먹고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H가 우리들이 무수히 끄적거려 놓은 글자중에 유독 ‘떠나리’라는 말에 부르르 떨더라는 것이다. 그 광경을 그냥 지나쳤어야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놓치지 않았던 우리의 킴이 “우리 이름을 떠나리로 할까?”라고 주변에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트레블 드림이니 TVD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대답들이 나왔다. 바로 ‘떠나리’가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감격의 이름, 떠나리

시드니

새 명함의 기쁨도 잠시 떠나리 구성원 모두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든 것은 현실이었다. 요새 간첩들은 생계형으로 알바도 한다던데, 우리도 꼭 그걸 따라할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배가 고픈 관계로 번역일이나 마트 판매 알바 등을 통하여 용돈벌기도 하였다. 이때 합류한 남자청년이 한명 또 있었으니, 이름이 B로 말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에게 다단계 의심을 종종 사곤 했던 남자청년이었다. 이 와중에 우리 떠나리의 소문이 저 바다 넘어 호주까지 나서 초청장이 발부되었다. 

“소문이 해외로 나서 이번에 시드니 회의 초청이 왔는데 누가가지?” 

사실 언뜻 이 말을 들으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청년들은 속으로 

“비행기 값은 내주나? 에이, 내가 안가도 누가 가겠지?”

라고 묵묵부답이어서, 결국 킴이 다시 말했다. 

“그럼 내가 가볼게.” 

모집자 1명에 지원자 1명이라는 경쟁률도 없는 호주행 티켓을 거머쥐고, 킴은 이리하여 결국 2015년 NGO 시드니 정기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 가기전에는 영어 때문에 고민을 하였는데,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 것이, 24시간 주구장창 영어로만 말하니, 나중에는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는 부처님같은 나 자신을 발견한 킴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회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2주동안 계속해서 진행되지만,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은 있다. 독일에서 온 여자 대표가 물었다. 

“근데 왜 NGO를 만든거야? 내가 아는 한국은 돈을 버는 게 중요하고, 이런 NGO 같은 창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질문을 받은 뒤 답하기를 

“우리가 좋아하는 캠프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개최하려고 하니, 조직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만들었어.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때론, 아닌 것 같다고 느낄때도 많아”

라고 말했더니 독일 애가 다시 말한다. 

“정말 진심으로 너희를 응원해 주고 싶어, 근데 정말 쉽지 않은 길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내가 도울 일 있으면 꼭 연락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는 이 독일애가 국제NGO 유럽본부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신분이 약간 높은 분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림으로 설명해주니깐, 이해가 쏙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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