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을 싫어한다. 요즘 세대들은 자존감에 집착한다.
자아 의탁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한 사람을 동경한다.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 여자들에게서 나타나는데 미디어에서 보이는 일명 '영 앤 리치'한 예쁜 여성에게 자아 의탁을 하며 표출된다. 덕분에 미디어나 엔터계에서도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막내딸, 사고 싶은 건 고민 안 하고 사는 능력 있는 언니 같은 캐릭터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먹히니 시장은 이를 반영할 뿐이다. 인스타그램의 셀럽들이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팔이 피플'이라고 불리는 인스타 속 그 언니들은 효소와 레깅스 하나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만큼의 매출을 올린다. '이걸 먹으면 나처럼 될 수 있어~' 이런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는 연예인은 멀고 인스타 셀럽은 가까워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마음이 소비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얼굴 한 번 마주 본 적 없는 그 언니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시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볍게 생각하기에는 꽤 슬픈 모습이다.
지나친 이상주의
현실 도피성 이야기를 싫어한다. 남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앞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인 책과 강의, 도태와 무능력함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상주의 강의와 도서를 말하기 위함이다. 무작정 쏟아내는 위로를 담은 강의는 나를 대신해 사회를 비판해준다. “너의 무능함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사회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 내 입으로 뱉으면 무책임해 보이는 그 말을 단상 위의 그 사람에게서 들으면 얼마나 달콤한가. 서점 매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위로를 전하는 에세이들이 즐비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를 안아주라는 그 작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위로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사람들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뒤쳐져있다고 느낀다면 뒤쳐진 게 맞다. 울지 말고 열심히 달려 나갈 방도를 찾으면 된다. 달콤한 위로는 당장 오늘 밤 위로를 줄 수는 있겠지만 내일의 나에게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자존감을 타인에게서 찾지 말자
연애 문제에서 많이 나타난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타인이 채워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가치를 올리고 마음을 고쳐 먹어야 바뀐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불안해한다. 보통 상대가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서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날것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잘못되었다면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잘만 산다고 하지만 더 나은 내가 되면 더 나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도 그만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콤플렉스가 없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굳이 찾으려 들지 않아서다. 학창 시절에는 거울을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얼굴이 안 예뻐 보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안 좋은 구석만 보였다. 나 역시도 자존감이라는 말에 꽂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외적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기를 쓰고 신문을 다시 읽었다. 일기를 쓰면 내면의 나를 돌아볼 수 있고 신문을 읽으면 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내가 부족해 보일 때가 가장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시점이다. 이때의 우울감을 차라리 독기로 바꿔 내 약점을 보완하는 편이 여러모로 건강하다.
자존감보다는 자신감이 배로 중요하다. 어감부터 다르다. 자존감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내야 할 것 같지만 자신감은 몸을 부풀리는 것에서 시작해도 좋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면 일단 근사한 옷을 입고 어깨를 펴고 밖으로 나가자. 서점에 가서 제일 표지가 멋진 책을 고르자. 몇 페이지라도 좋으니 일단 읽어보는 거다.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들떠도 좋다. 책을 읽고 신문을 읽으면 의견을 나누고 싶어 진다. 아는 척도 괜찮고 얕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도 좋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해지고 관심사가 넓어진다.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빛이 난다.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자신감은 따라온다.
마찬가지로 콤플렉스를 없애고 싶다면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그건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다. 특히 콤플렉스를 말하면 그 부분이 먼저 보인다. “나 하체비만이야! 다리 보지 마”하면 다리로 시선이 가서 오히려 강조되는 것과 같다. 남들은 내게 큰 관심이 없다. 굳이 그들에게 내 약점을 던져 줄 필요는 없다. 차라리 “저는 허리가 얇아서 고민이에요”하는 편이 낫다. 약점보다는 강점에 방점을 찍자. 동정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는 편이 편하다.
그렇다고 약점을 방치하지는 말고 장기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게임도 만렙을 찍으면 재미가 없다. 지금의 나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