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을 읽을까, 100번을 읽을까

by 리치보이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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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1년 동안 책 한 권,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6명이나 되는 이 나라에서 1권을 거듭 읽으면 좋은가, 100권을 읽는 것이 좋은가를 논하는 자체가 모순된 상황이라 마음이 꽤 불편하다.


하지만 세네카 시절에 있어서 책은 너무나 희귀해서 '큰 재산이자 권력'에 해당했다. 그렇다고 놓고 생각하면 다독을 할지 탐독을 할 지 고민하는 건 오늘날 우리가 '어떤 주식을 살까?'를 고민하는 것 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라 하겠다.


30년을 넘게 책벌레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에 대해 많이 고민도 하고, 나름의 방법대로 비교도 해 보았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어느 방법이든 좋다. 읽기나 해라'고 말하고 싶다. 다독을 하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다양성은 확장되었고, 통신기술의 발달로 매일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는 뉴스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내가 '잘' 알아야 한다. 그것도 생선 비늘처럼 흩어진 정보의 조각들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나의 관심사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을 읽어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되도록 많은 책을 읽는다는 건 '많이 앎'이라는 수준에서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세네카의 말대로 '소수의 저자들이 뿌린 씨앗에서 지혜의 싹을 틔우는' 방법인 한 권을 거듭읽기는, 책읽기의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물론 '훌륭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전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책은 거듭 읽을수록 새로운 책이 된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시간의 흐름만큼 흘러버리는 강물인데 어떻게 같은 강물이 있을 수 있을까.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책이지만 한 번을 읽었을 때의 내가 다르고, 두 번째 읽었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이미 한 번을 읽어 변해버린 내(물론 읽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늙었고, 조금 더 경험했고, 조금 더 느꼈다. 그러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 수 밖에 없다)가 같은 책을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처음 보다 더 많은 것이 알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천년 동안 수천 수억 명이 좋아했던 책처럼 훌륭한 책이라면 느껴지는 크기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많이 읽고 싶으면 그것도 좋고, 한 권을 거듭 읽고 싶으면 그것도 참으로 좋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처럼 죽어라고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나는 오히려 '책을 읽는 이유'를 강조하고 싶다. 챗GPT의 시대에 독서가 주는 순기능 중에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는 항목은, 이제는 빼야 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나는 '책을 읽는 행위'에 주목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오롯이 혼자가 된다. 사람이 많은 곳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가 책읽기에 몰입하는 순간,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요즘처럼 혼자가 되기 힘든 세상(SNS를 보는 동안도 혼자 라고 내게 퉁을 놓는다면, 난 자네와 말하고 싶지 않다)에 독서는 '자발적 고독'을 선물해 준다.


'주가 5000 시대'에 내 주식은 여전히 마이너스든지, 아니면 주식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금, '풍요 속 빈곤'이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때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연거푸 술을 마셔 시간을 잊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감정에 매일 허덕이는 나는(?) 술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리고 '망해버린 나의 오늘 시황'이 내일은 변하기를 고대한다. 그 점에서 요즘 나의 독서는 차라리, 책을 읽는 중이 아니라 도를 닦는 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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