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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Feb 26. 2024

자녀가 리딩존reading을 경험하면, 저 혼자 읽어요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조용히 책을 읽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부모로서 가장 보고 싶은 아이의 모습 중 하나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일 것이다. 그럴진대 글쟁이인 난 그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이가 어릴 때 부터 많은 노력을 했지만,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먼저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따라 읽겠지' 하고 아이 앞에서 틈만 나면 책을 읽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책을 읽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책을 파기 시작한 건 같은 초등 2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가 추천한 의외의 책 한 권 덕분이었다. 바로 앤디 그리피스가 쓰고 테디 덴톤이 그린 <130층 나무집> 이라는 책이었다.


반가운 말에 두 말 않고 얼른 주문해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아이 옆에서 살펴 보고는 크게 낙담했다.

낙서 같은 그림이 가득하고, 글은 몇 줄 없는 '이게 뭐가 책이야?' 라는 성토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참고 지켜봤다. 놀랍게도 아이는 이 엉망진창 같은 책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그 후 아이는 재미있다며 매일 이 책을 붙들고 읽었고, 시리즈로 있다며 모두 읽고 싶다고 해서 <13층 나무집>부터 모두 열 권을 사다 안겼다. 아이는 이 책들을 몇 달을 안고 키득거리며 읽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나무집 시리즈> 이후부터 다른 책을 읽어도 끝까지 읽어냈다. 더 신기한 건 내가 골라준 책은 다 읽지 않는데, 자신이 고른 책은 끝까지 읽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 시리즈는 <나무집 시리즈>보다는 글밥이 조금 더 많은 <전천당 시리즈> 였지만 아이가 책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이 때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책, 이른바 홈런북homerun-book을 만난 것이다.





내가 아닌,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하라!


올해 초등 5학년 개학을 앞둔 아이는 읽고 싶은 책을 서재에서 골라 두 세 시간, 혹은 2~3일에 걸쳐 한 시간씩 책 한 권을 뚝딱 읽고, 나와 토론을 거친 후 독서록까지 써내는 독서인이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의 내용과 감동한 내용을 몇 분에 걸쳐 이야기하고 '내 감정을 움직였던 대목'이나 '인상적인 구절이나 표현'도 궁리하며 말하는 정도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숨은 노력이 있었다.


거실에서 TV를 없앴고, 서재를 들여 놓고 책을 구입할 때 마다 아이가 언박싱을 해서 서재에 꽂게 했으며 이번 달에는 몇 권이 우리집 서재에 입주했는지 카운트하게 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구입해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이가 있는 공간에서는 가급적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가 심심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도록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게 순식간에 변해 버린다. 그리고 홈런북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책에 빠져든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소개하는 책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에서도 아이에게 독서습관을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게 하라고 강조한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요즘 아이의 하루 중에 스스로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다. 아침에 깨어나면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학교와 학원, 그리고 숙제'가 연달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서 딴짓을 할망정 '안 간다'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저자 낸시 앳웰은 아이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가 운영하는 독서학교에서는 스스로 읽을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포기하고 다른 책을 고를 자유, 그 무엇으로부터 강요받지 않을 자유를 강조한다. 이 학교가 추구하는 우리(어른)이 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이에게 직접 책을 골라 주지 않는다.

아이의 독서 여정을 방해하지 않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서에 상을 내리지 않는다

불필요한 읽기 훈련으로 독서의 아름다움을 왜곡하거나 어지럽히지 않는다.

아이에게 잘못된 정보다 공공연한 비판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이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독서 가이드북이라면 이 책은 7학년 그러니까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에 이르는 청소년들의 독서활동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20년 이상 독서학교를 운영하면서 청소년들이 책읽기를 즐기고 급기야 독서 몰입의 순간인 '리딩존 reading-zone'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하는데 어떤 과정들이 펼쳐지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리딩존이란 독서가가 현실을 뒤로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상태이다."

본문 39쪽



아이들이 꼽은 리딩존으로 들어가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선생님(부모)의 격려와 조언, 학교(가정)에서 책 읽는 시간, 넘쳐나는 양서, 절대 고요, 좋은 책을 추천받는 북토크 시간, 편안한 쿠션과 베게, 매일 밤 30분의 독서가 그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냑의 책 <배터 댄 라이프Better Than Life>라는 책에 언급된 '독서인의 권리장전'을 소개하며 독서인의 열한 번째 권리 조항으로 '(책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로 꼽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권리는 무엇일까?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서인의 권리장전


01. 내키지 않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02. 페이지를 뛰어넘어 읽을 권리

03. 다 읽지 않을 권리

04. 다시 읽을 권리

05. 무엇이든 읽을 권리

06. 상상의 세계로 도피할 권리

07. 어디서든 읽을 권리

08. 대충 훑어볼 권리

0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자신의 취향을 변명하지 않을 권리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내 마음대로 읽을 권리'를 말한다.


저자가 '독서인의 권리장전'을 소개하며 강조한 부분은 바로 '자율성'이다. 책읽기에 규칙도 없고, 왕도도 없다. 그저 독자가 제 마음대로 즐겁게 읽기만 하면 그만! 이라는 것이다. 더우기 친구들과 함께 해가 질 때가지 맘껏 뛰놀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책 읽기'라도 제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유독 '인터넷과 게임'에 몰두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게임과 인터넷에 빠져드는 건 '부모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 말은 물론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과 게임'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에서는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 읽기에 있어 아이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줘야 진정으로 책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면서도 곱씹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제아무리 좋은 것도 부모가 시키면 안 하는 이들이 청소년'이 아니던가.



책이라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자율성을 허하라!



그 점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독서학교의 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독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제 마음껏 책을 골라 읽고, 읽은 후에 같은 책을 읽은 아이들끼리 자신의 읽은 바에 대해 이야기하며 의견을 나누고 좋은 책을 추천하고 추천받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느낀 것은 나 뿐 아니다'라는 동료감과 함께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고 싶다'는 경쟁심을 갖게 된다. 이런 시간이 회를 거듭할수록 '틈만 나면 책을 읽는 독서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주변에 마땅한 독서학교도 없고, 아이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을 기회도 적은 현실이지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던 아이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청소년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어준다. 나아가 모든 민간교육 강사들을 포함한 모든 교육전문가들이 '초등 교육의 우선순위는 독서'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책읽기를 즐거운 독서인이 된 아이는 자라서 어느 대학을 가던, 어떤 직업에 종사하던 제 자리에서 역할을 충실하게 할 뿐 아니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 통하며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부모가 바라던 자녀의 미래 모습이 아니던가. 이 책을 통해 아이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된다. -richboy




<<저자의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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