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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Mar 12. 2024

지금 내아이가 읽어야할 책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초등독서 로드맵(5)

“책 읽기를 싫어하는 내 아이, 어떻게 해야 책을 읽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선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읽게 해 주세요.” 


저는 그동안 많은 ‘독서와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할 때 마다 많은 학부모들께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게 하라’고 전했어요.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학부모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을 거라면 고전을 읽어야 하지 않나요?” 

“다른 애들이 많이 읽었다는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따라 읽어야 뒤지지 않잖아요.” 

“우리 애는 만화책만 읽겠다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다시 한 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읽게 해 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곧 책읽기를 좋아하게 될 겁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데에는 여러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우선 아이가 읽을 책에 대해 부모가 개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작 책을 읽을 당사자는 아이 자신이니까요. 아이에 따라 자신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은 아이 수만큼이나 다양할 겁니다. 하지만 아이가 얇은 책을 고르던, 학습만화를 고르던, 어떤 책을 고르던 간에 부모는 “그것 참 재미있겠다.” 하고 아이의 선택에 호응해 줘야 합니다. 심지어 아무런 지식이 담겼을 것 같지 않은 만화책을 고르더라도, 그래서 말리고 싶고, 다른 책을 권하고 싶어도 그냥 꾹 참고 응원만 해 주세요. 


아이가 무슨 책이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면, 그 때부터 ‘아이의 책 읽기는 시작되었다’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이는 책 속에 담겨 있는 활자를 읽으면서 일상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어휘와 생각’을 만날 테니까요.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하고 몰입을 경험할 겁니다.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글자가 없고 그림이 많더라도 읽기 시작 한다면 아이는 책읽기를 하는 것이고 그건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부모의 학창시절,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를 기억해 볼까요? 컴퓨터 전원 켜는 법을 알고 윈도우즈를 여는 것 밖에 알지 못해서 막막할 때 컴퓨터를 잘 하는 선후배들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지뢰찾기와 카드놀이를 해 봐. 그럼 컴퓨터는 저절로 알게 돼.” 







그렇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게임을 하면서 컴퓨터를 작동하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마우스를 옮기는 방법을 익히면서 컴퓨터와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림이 많고, 활자도 크고, 수준 낮아보여서 그래서 부모님이 그걸 지켜보기가 당황스럽더라도, 아이는 지금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 거에요. 글을 읽기 힘들면 그림이 가득한 그림책을 더 좋아할 테고요, 책 읽기가 점점 익숙해지면 그림이 줄어들고 글밥이 많은 책으로 서서히 옮겨 탈 겁니다. 


만약 내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학습만화를 즐긴다면 안타깝더라도 아직 내 아이의 독서 단계가 만화로 된 글을 더 좋아하는 것이니 너무 초조해 하지 마세요. 머지않아 곧 글밥으로 가득한 책을 읽을테니까요. 


‘정말 그럴까?’ 하고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독서가 사이에는 요즘 말대로 진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독서전문가들이 ‘학습만화도 좋고, 심지어 만화책이라도 좋다. 아이가 읽겠다면 읽혀라’라고 말하는데요, 그 과정을 자신도 경험했고, 오랫동안 그런 변화들을 목격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은 아이가 몇 페이지 안 되는 얇은 책 하나 달랑 읽고 “책을 다 읽었다.” 하거든 “와, 책을 다 읽었구나. 잘 했다!” 하고 칭찬하세요. 


아이의 책 읽기는 하루 이틀 하고 끝낼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제 수준에 맞지 않은 책을 고른다고 해서 “얘, 이건 네 수준이 읽을 책이 아니야!” 하고 아이가 읽기도 전에 미리 말리지 마세요. 아이가 책을 펼쳐보고 몇 장 안 넘겨서 ‘아, 이건 나한테 안 맞구나’ 하고 느끼면 스스로 그만 둘테니까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 아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골라 읽는 건 한편으로 아이가 ‘책을 마음껏 선택할 자유’를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더 이야기하겠지만 아이에게 자율성은 책읽기와 공부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시키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걸 해야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책읽기에서 제일 당황스러울 때는 “난 읽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책을 읽고 싶지 않다고. ” 라고 말을 할 때입니다. 

제 아이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제 아이는 무슨 이유인지 좀처럼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어요. 책을 읽어주려 해도 자리를 피할 만큼 책읽기를 싫어했습니다.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유튜브와 핑크퐁 같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밥을 먹였는데, 그 때문인지 책보다는 영상보기를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 탓에 한글 익히기도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뗄 정도였요.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책읽기에 도통 흥미를 갖지 않던 아이는 2학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불쑥 제게 ‘나무집 시리즈’ 책을 사달라고 했어요.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읽는다며 자기도 ‘갖고’ 싶다고 하더군요. 앤디 그리피스가 쓰고, 테리 덴톤이 그림을 그린 ‘나무집 시리즈’는 <13층 나무집>을 시작으로 13층씩 더해서 모두 <130층 나무집>까지 출간되었더군요. 


제가 볼 때 ‘나무집 시리즈’는 엉망진창 같은 책이었어요. 글자도 몇 줄 안 되고, 낙서 같은 그림으로 가득한 게 영 불만족스러웠죠. 그런데 이런 책이 전 세계 아이들에게 굉장한 인기와 사랑을 받는 밀리언셀러 북이라니...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이 책에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은 3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이란 거에요. 아이는 이만큼 두꺼운 책은 이제껏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아이가 다 읽지 못할 게 뻔했어요. 


하지만 아이가 ‘갖고 싶은 책’이라는데 어쩌겠어요. 아이의 성화에 마지못해 세 권을 사줬더니 이틀 만에 다 읽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신기했어요. 아이는 ‘나무집 시리즈’ 세 권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어요. 희한한 건 읽을 때 마다 마치 처음 읽는 책인 것처럼 킥킥대며 재미있어 하더군요. 물론 아이는 ‘나무집 시리즈’를 읽느라 그 좋아하던 유튜브 보기를 까맣게 잊어버렸죠. 







아이는 ‘나무집 시리즈’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책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조금이나마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 같았어요. <130층 나무집>까지 11권을 여러 번 읽은 아이는 ‘나무집 시리즈’ 책처럼 재미있는 책이 또 없냐?’고 제게 묻더군요. 그 다음에 아이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시리즈를 읽고 싶다고 했어요. 같은 반 옆에 앉은 여학생 짝이 학교에 가져와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적극 추천했대요. 그리고 아이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시리즈도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제 아이의 책읽기는 이렇듯 거짓말처럼 시작되었어요. 엉망진창인 것 같은 ‘나무집 시리즈’가 아이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재미있는 책’이 된 거에요.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을 쓴 낸시 앳웰은 아이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책을 홈런북homerun-book 이라고 불렀는데, 제 아이에게 ‘나무집 시리즈’가 홈런북이 된 겁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데면데면하며 읽던 아이가 어느 날 ‘이 책, 너무 좋다’고 느끼는 책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런 경험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책에 대한 호감을 높여줍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책만 골라서 읽던 아이는 어떤 책이든 그 속에서 ‘재미’를 찾게 됩니다. 아이는 머지않아 모든 책에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책 읽는 재미’를 찾은 아이는 결국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가 됩니다. 이렇게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읽는 책의 주제도 다양해지고, 좋아하게 된 주제에 대한 깊이가 점점 깊어지죠. 그래서 앎의 지평이 점점 넓어집니다. 


부모님은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아이가 무슨 책을 읽던 아이의 책읽기를 응원하고 묵묵히 기다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설령 만화책만 읽던 아이라 하더라도 곧 학습만화로, 학습만화에서 글밥이 더 많은 책으로 옮겨가면서 읽을 거에요. 


부모님 중에는 “옆집 또래의 애들은 글밥이 많은 책을 읽고 있던데, 속 터지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 고 조바심을 낼 수 있을 텐데요, ‘독서는 마치 대나무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한 남자가 날마다 대나무 밭에 있는 잡초를 뽑고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대나무 싹은 트지 않았어요. 남자의 이러한 정성을 계속 지켜봤던 이웃 사람이 다가와 물었어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밭에서 왜 이런 고생을 하십니까?” 

그러자 남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자는 그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싹도 보이지 않는 대나무밭에 매일 물만 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이웃 사람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죠. 

“당신 미친 거 아닙니까? 왜 이런 일을 계속 합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남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3년째 되는 해 어느 날, 남자는 짐승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대나무 밭 주위에 낮은 울타리를 세웠어요. 그리고는 또 다시 아침마다 개울에 가서 물을 길어와 대나무 밭에 주었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작지만 파란 새싹이 흙을 뚫고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는 쑥쑥 자라 6주 후엔 무려 18미터나 자라났습니다. 싹조차 나지 않던 오랜 시간 동안 대나무는 뿌리를 더 깊고 넓게 뻗었던 겁니다. 


내 아이의 책 읽기는 대나무 농사와 똑같습니다. 

읽기만 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많은 시간 동안 아이들의 뇌 속은 새로운 어휘들로 폭발하듯 변화하고 있어요.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아이가 무슨 책을 읽을 읽던 ‘읽고 싶은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머지않아 우후죽순의 대나무처럼 성장할 겁니다. 부모님은 그 때를 기다리며 참고 응원하면 됩니다. 

그래도 아이가 읽는 책이 영 못마땅하거든 ‘네가 게임하고 인터넷 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구나’ 하고 위안을 삼는 건 어떨까요?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기억하세요>>

아이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책읽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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