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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Mar 13. 2024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다면, 엄연히 독서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초등독서 로드맵(6)


“제 아이는 만화책이나 학습만화만 읽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에요.” 



강연 때 마다 꼭 듣는 청중의 하소연 중 하나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간신히 한글을 깨치게 하고 ‘이제 알아서 책을 잘 읽겠지’ 하고 기대했더니, 만화책만 산처럼 쌓아놓고 읽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타겠어요. 학습만화를 보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책, 다 읽었다’며 딴짓을 하니 이 또한 못마땅하겠죠. 



하지만 전,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같은 대답을 합니다. 

“답답하겠지만 그냥 두세요. 지켜보기 정말 힘들겠지만, 책을 잘 읽고 있다고 칭찬해 주세요. 그러다 보면 점점 글밥이 많은 책을 읽을 거예요.”



그러면 따지듯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아니, 옆집 아이는 그림 하나 없는 책을 술술 읽는다고 하는데....우리 아이는 왜 만화책만 보는 거죠? 지켜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만화로 가득한 책을 붙들고 있는 걸 봐야 하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머지않아 변할 거예요. 변하는 건 틀림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게임에 빠져 있는 것보다 만화책에 빠져 있는 게 훨씬 낫잖아요?”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갖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이런 바람이 ‘조바심’으로 바뀌면 아이와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고 했어요. 옆집 부모와 우리 부부가 다르듯 옆집 아이와 내 아이는 다릅니다. 옆집 아이가 글밥이 많은 책을 읽는 데는 그 아이가 책과 친해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이가 날 때부터 머리가 비상했거나, 어릴 때부터 매일 30분 이상 부모가 책을 읽어줬거나, 거실에 커다란 텔레비전 대신 서재로 꾸며져 있을 거예요.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남과 비교하면서부터’ 라고 톨스토이가 말했어요. 

옆집 아이의 이야기에 부모의 귀가 솔깃했던 건, 사실 ‘부모의 조바심’ 때문이 아닐까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만화책을 보던 학습만화를 읽던 내 아이가 지금 책에 빠져 있다면 내 아이는 분명히 ‘책을 읽고 있는 중’이란 걸 알아야 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게임에 빠져 있거나 멍~하니 인터넷만 쳐다보고 있을 시간에 책을 읽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한 일이에요. 







다시 한 번 강조해요. 아이가 ‘만화책이나 학습만화를 읽는 것도 엄연한 책읽기’ 입니다. 

미국 국어 교육 분야의 석학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크라센 박사가 쓴 <크라센의 읽기 혁명>이란 책이 있어요. 그는 이 책에서 ‘만화책과 읽기의 관계’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다뤘는데요, 만화책은 아이들의 읽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밥이 많은 책으로 넘어가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어요. 



내 아이가 한글을 익혀서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읽는 내용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글을 알아서 읽을 수 있을 뿐 읽은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아직 알지 못해요. 쉽게 말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겁니다. 



8~9세 아이의 뇌는 글을 읽으면서 동시에 읽은 내용도 이해 할 만큼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아이가 10살 정도가 될 때 까지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좋다고 교육전문가들은 말하죠. 부모가 읽어주면 아이가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수고는 할 필요 없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제 아이도 '해리포터'를 혼자 읽을 때는 재미없고 힘들다고 하더니 제가 책을 대신 읽어주니 정말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직접 읽는 대신 듣기를 통해 상상만 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만화책을 읽고 학습만화를 읽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만화로 읽으면 책이 훨씬 더 재미있고 이해가 잘 되니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아이가 ‘책을 펼쳐서 읽고 있다’는 거예요. 한 권 읽고, 두 권 읽고, 열 권짜리 시리즈를 읽으면 아이는 ‘책읽기가 게임만큼 재미있구나’하고 느낄 겁니다. 



만화책은 그림책과 글밥 많은 책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요. 제아무리 내용이 훌륭한 책이라도 갑자기 글밥이 많은 책을 만나면 아이들이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해요. 만화책과 같은 가벼운 읽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어 기능이 점점 발달되서 자연스럽게 글밥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책에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는 읽고 싶은 만화책을 권한다면 호의를 가질 거에요. 



만화책에 푹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 좋아하던 TV시청도 하지 않고, 게임도 하지 않고, 모든 감각이 닫힌 채 오직 만화책만 눈에 보이는 듯 언제 어디서든 틈날 때 마다 만화책을 읽으니까요. 한 권을 읽자마자 다음 책을 펼쳐서 무섭도록 만화책에 빠지는 내 아이를 본다면 그 집중력에 혀를 내두를지도 몰라요. 다른 건 몰라도 ‘책에 푹 빠지는 재미’를 배우는 데는 만화책만한 게 없어요. 



또한 요즘 나오는 학습만화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좋은 책이 정말 많거든요. 아이들 한자 교육의 시작에는 ‘마법 천자문 시리즈’가 대표적이고요, 세계사 교육의 시작에는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와 같은 학습만화가 수십 년 동안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학습만화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부모들이 한 번 쯤은 읽어 봤을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가 어린이를 위해서 학습만화를 시리즈로 출간되었고요, <과학콘서트>로 잘 알려진 뇌과학자로 정재승 교수도 ‘인간 탐구 시리즈’, ‘인류 탐구 시리즈’ 등의 학습만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뇌과학을 알리고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어요. 









이렇게 유명한 작가들이 왜 어린이를 위한 학습만화를 쓰고 있는 걸까요? 좋은 콘텐츠를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학습만화’라는 쉽고 재미있는 구성으로 만드는 거예요.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을 일러 ‘알파세대’라고 불러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이 존재했던 세대, 인터넷 영상을 보며 젖병을 빨고, 이유식을 먹은 세대들이죠. 이들에게는 영상이 활자보다 더 친숙한 세대예요. 영상과 활자, 그 가운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만화책이고 학습만화예요. 








책 읽기는 아이의 밥 먹기와 같아요.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유나 분유를 먹어요. 이가 없으니까요. 물로 된 영양 덩어리를 삼키면서 밥을 먹는 거죠. 아이가 이가 자라기 시작하면 이유식을 먹어요. 잘게 부순 알갱기가 있는 죽이지만 여전히 굳이 씹지 않아도 되는 농축된 영양 덩어리예요. 이는 있지만 아직 잘 씹지 못하니까요. 이가 모두 생기고 잘 씹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밥을 먹이죠. 조급한 마음에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아기에게 어른이 먹는 밥을 먹이지는 않잖아요? 부모는 그저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요. 



책 읽기도 아이의 밥먹기와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활자로 가득한 책을 줄줄 읽고 내용을 이해하진 못해요. 그 점에서 그림책이 모유나 분유라면, 만화책과 학습만화는 이유식 같은 거예요. 설렁설렁 그림만 보는 것 같아도 아이는 엄연히 책을 읽고 있는 거예요. 



내로라하는 독서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어릴 적 미친 듯이 만화책을 읽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독서가는 어른이 된 지금도 틈나면 만화책을 펼친다고 해요. 만화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재미를 익혔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만화책 읽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거에요. 수많은 독서가들이 어릴 때 만화책을 즐겨 읽다가 책읽기를 즐기게 되고 글밥이 많은 책으로 옮겨간 것처럼 머지않아 곧 아이들도 만화책에서 점점 그림은 줄고 글자가 많아지는 책으로 옮겨갈 거예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대표적인 일이 자녀교육입니다. 내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글밥 많은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지식 쌓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하루씩 점점 나아지겠지’하고 믿으며 지켜보기를 권합니다. 아이가 이빨이 나서 밥을 먹는 그날을 기다리듯, 그때까지 그저 응원하며 기다려주면 돼요. 조급하고 안타깝겠지만, 그래야 해요.




<<기억하세요>>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다면, 엄연히 독서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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