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때 아이의 두 번째 독서록.
사람은 호빵맨같고 색칠도 엉망이다.
여섯살 때 '놀작'이라고 놀이 하듯 미술을 하는 학원을 다녔는데 무색할 만큼이다.
이럴 때면 정말이지 '본전' 생각난다.
하지만 아이가 독서록에 무슨 난리를 치든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글씨를 못 써도, 글자가 틀려도, 그림을 엉망으로 그려도, 색칠을 색맹을 의심하게 칠해도...
그저 칭찬해 줘야 한다.
아이가 그림 독서록을 그리는 과정은 이렇다.
첫째, 책을 모두 읽었다.
둘째, 그림을 그리기 전 읽었던 책을 '생각'해 냈다.
셋째, 내가 읽은 책 내용을 어떻게 그릴까 '상상'했다.
넷째, 자신이 상상한 내용을 마음껏 '표현' 했다.
어른이 보기에 '개떡 같은' 독서록은 이런 놀라운 과정이 숨어 있다.
아이가 그림독서록을 그리는 동안은 '창작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림 독서록을 마쳤을 때 아이는 필경 '해냈다'고 뿌듯함을 느꼈을 테고
부모에게 '나 잘 했지?' 하며 자랑하고 싶은 '자신감'도 생겼을 거다.
그런 아이에게
"너, 글씨를 왜 이리 삐뚤빼뚤하게 쓰니?"
"책에 이 내용 밖에 없니?"
"이걸 그림이라고 그렸니?" 라고 부모가 퉁을 놓으면 아이가 이제껏 그림 독서록을 그린 보람은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에이, 난 못 하나봐. 그럼 앞으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갈수록 그림 독서록 그리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읽기를 마치면 하는 '놀이'가 아니라 '숙제'이면서 '일'이면서 '부모에게 혼날 구실'이 되니까 싫어지는 거다.
'아이가 책을 읽고 자신의 느낌을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다'는 건 아이의 일생에 있어 놀라운 발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이러한 성장을 함께 기뻐하고 칭찬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또 다시 책이 읽고 싶어지고, 그림 독서록을 쓰고 싶어진다.
내 아이의 글씨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처음 연필을 쥘 때 '연필 쥐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연필을 주먹쥐듯 쥐고 글을 쓰니 글자가 예쁠리 없고 아이도 글을 쓰면서 글자가 보이지 않아 자꾸만 옆으로 옆으로 기대어 쓰다 보니 거의 엎어져서 글씨를 썼다. 그래서 눈도 나빠졌다.
'뭔가 해결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난 것이 초등 2학년 때 방과후 수업으로 '서예반'이었다. 서예반에 신청하기 전에 미리 아이와 함께 서예반에 들러 선배들이 붓으로 글씨를 쓰는 걸 보여줬다. 조용한 가운데 붓에 먹을 먹인 다음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는 모습이 아이에게 인상적이었는 듯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 결과는 짐작하듯 글자를 잘 쓰게 되었다. 사방 2센티미터의 작은 사각형 안에 글을 쓰던 아이가 큼지막한 화선지에 마음껏 글자를 써내려갔다. 덕분에 집중력도 생기고 침착해졌다. 물론 부작용은 온몸에 먹물을 뭍혀왔다는 것. 아무리 주의를 줘도 8~9살의 아이가 조심성이 있을까. 한 두 해 '서예시간'이 있는 날은 달마시안처럼 해서 돌아오더니 중학년이 되어서는 괜찮아졌다. 아이가 옷을 더럽혀도 걱정하지 않았다. 옷이 망가져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부담없는 옷을 입혔으니까.
정리하면 이렇다.
아이가 읽어야 할 최고의 책은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이고,
아이가 그림 독서록을 그리면 어떤 작품(?)이 나오더라도 칭찬할 것!
그러면, 아이는 꾸준히 잘 쓴다, 아니 그린다. 그리고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틀림없이. -Richboy
첨언하자면, 초등 5학년이 된 아이의 최근 독서록을 소개한다. 아이가 꾸준히 독서록을 쓰기만 하면 이렇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