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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베개를 사 놓고 글을 써 보고는 싶은데 펜으로 글을 쓸 일이 없어, 굳이 포스팅을 하며 써 봤다.
필체는 엉망이지만, 글을 쓰는 맛이 좋아 한동안 이렇게 해 보려 한다.
사람들이 내 서재를 오면 열에 아홉은 이 질문을 한다.
"이 책, 다 읽었어요?"
"설마요, 난 읽은 책은 전부 버려요."
이렇게 대답하면 더 이상 묻지를 않아서 편하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책을 읽고 싶어 먼저 서재에 모셔놓은 것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책 정리를 하다 보면 '이 책 살 돈을 다 모았더라면...' 하고 가늠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을 한 권도 사지 않고 그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기천만원은 되었을 것이고, 수십년 동안 책을 샀으니 비록 적금형식이지만 복리이자로 따진다면.....휴우~~ 정말 많은 돈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이 그치면 아쉽기만 할 뿐 재미없다. 그 돈으로 뭐 했을까? 생각해야지. 아마도 소고기 사묵었을 것이다. 아니면 책을 읽지 않아 지금보다 아둔했을 테니 필경 쓸데 없는데 흘리고 다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난 서재에 책이라도 건졌구나 ...'
친한 친구 중에 기업체 사장님이 있다. 이 친구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현명한 사람이다. 인간관계를 하면서 왠만해서는 실수하지 않고, 사업수완도 좋다. 성격도 좋고, 마음씀도 좋다. 그리고 사내답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보면 늘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모든 걸 가졌구나!"
이 친구의 비결은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내가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가려내고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느라 잠자리에는 일찍 들지만 잠은 몇 시간 못 잔다고 했다. 처음에는 '잘못한 일' 투성이였는데, 요즘은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하는 일도 적어서 '잘못한 일'이 별로 없어 일찍 잠든다고 했다.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는 매일이다 보니 '잘못한 일이 별로 없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글을 읽으며 이 친구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 톨스토이도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보다.
독서는 알고 보면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심하면 소리내어 책을 읽는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주인공이 바뀔 때 마다 목소리를 바꿔 읽기도 한다. 어제는 내 아이의 초등 6학년 국어책을 아이와 함께 읽었다.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심심하지 않다. 혼자 있는데도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아무 할 말이 없는데 말하고 싶을 때, 심심할 때, 외로울 때는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좋다. 아니 재미있기까지 하다. 놀라운 건 내가 말하는 걸 귀로 들어서 묵독, 즉 눈으로 읽을 때 보다 뇌활동이 더 활발해진다고 한다. 또한 눈으로 읽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또 들으니 세 번 읽는 격이 되어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내 친구는 내게 자주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과 고민에 대해 말을 건다( 사업을 하는친구에게 방해가 될까봐 나는 잘 걸지 않는 편이다). 나와 말을 하다 보면 고민이 풀리고, 답이 절로 나온다고 종종 말한다. 내가 그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 고민을 내게 말하면서 부터 슬슬 고민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너 덕분에 내 고민이 풀렸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결론을 말하면 저절로 똑똑한 사람은 없다.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도 누군가가 없으면 외롭고, 고민덩어리가 된다. 친구들에게도 친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없으면 책이라고 소리내어 많이 읽기를. 그래서 도움이 되거든 내 덕분인 줄 알고.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