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경쟁하고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라" -캔디스 밀러드
우리는 다른 부모들과 경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교 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차와 내 차를 비교한다. 학교 기금 모금 행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멋지게 차려입는다. 이런 경쟁심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녀가 학교 친구들과 비교하여 어떤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살펴보게 되고, 자녀에게 또래들이 가진 것과 같은 전자기기를 사주게 되며, 졸업생 대표나 야구팀 주장, 학생회장이 되라고 강요한다.
이것이 피상적인 경쟁이 아니라 어리석고 파괴적인 경쟁일 수 있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질 수 밖에 없는 경쟁일 뿐만 아니라 - 언제나 우리보다 더 부유하고, 멋있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 아이들에게 최악의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와 경쟁해야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과 경쟁하여 '최고의 자신'이 되라고 말해줘야 한다. 자신이 실제로 토제할 수 있는 것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도 그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더 충실하고, 더 친절하고, 아이들과 더 즐겁게 놀자. 당신의 부모에게 받은 것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과 경쟁하자. 자녀가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당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자.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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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린 자녀를 둔 아빠이기도 한 라이언인 만큼 오늘날의 부모가 아니라멸 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경쟁에 빠진 부모가 국내 상황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부모는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같은 동네 아이 누구 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다.
다른 아이에게 없는 무엇이 생기면 자랑하려 하고, 내 아이에게 없는 무엇을 남이 가지면 '기 죽으면 안되니까' 하는 마음에 덩달아 '장착'을 해준다. 그래서 아이들 옷값이 점점 더 많이 들고, 가방을 비롯한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과하다'싶을 정도로 구비하게 된다. 그 뿐 아니다. '공부 잘 하는 누가 어느 학원을 다닌다더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내 아이의 수준과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그 학원에 줄을 세우기도 한다.
경쟁의 근저에는 '비교'가 깔려 있다. 이 부모와 저 부모가 다르듯 아이들도 천차만별인데,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는 이유로 뭉뚱거려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한다. 그 때문에 부모의 지갑은 ATM기가 되고, 아이들은 비교군으로 전락한다.
아이였고 학생이었던 부모들 모두 그것들이 '한낱 부질 없는 짓'인 걸 잘 알지만, 아직 그런 걸 모르는 내 아이의 투정을 차마 이기지 못하고, 기 죽을까 두려워 현질을 하는 것이다. 초등 학부모인 나 역시 매 순간 이런 상황을 만난다. 아이는 저만 없다고 투정하고, 그래서 큰 일 날 것 처럼 어수선을 피운다.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를 이해시키는 힘든 과정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된다. 하지만 이 순간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고 또 다른 비교군을 들고 아이는 투정댄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다음 주 까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사주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당장 필요한 것'을 들고 올 테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가 필요한 열 가지 중에 꼭 필요한 두 세가지만 남는데 그걸 사 준다. 그것이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 테니까.
"비교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순간 스스로 지옥불을 뒤집어 쓰는 셈이 된다. 라이언의 말대로 '찐 경쟁은 스스로와 하는 경쟁'이 아닐까. -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