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감각‘, 그리고 ’변화를 감지하는 힘‘를 일러 우리는 ’촉(觸)‘이라고 말한다.
동물들이 매일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그들만의 '촉'이 있어서다. 장마가 오기 하루 전 개미들은 벌써 알고 이사를 하고 무너질 위험이 있는 건물에서는 쥐들이 먼저 짐을 싼다. 2008년 중국 스촨(四川 성에 강도 7.8의 지진이 일어나기 사흘 전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떼를 지어 이동했을 때 사람들은 두꺼비의 이동을 피난으로 보지 못했다. 대재앙에 피해를 본 건 사람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촉이 없는 걸까?
직장을 다니면서 정든 집을 떠났다. 말은 독립이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였다. 그 후로도 아버지와 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멀리, 더 멀리 집을 옮겼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느 날 간밤에 꾼 꿈에 내 윗니가 몽창 빠지는 꿈을 꾸었다. 깨어보니 한밤중인데 소름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고 무서웠다. 이른 아침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인간에게는 무서울 만큼의 촉이 있다'고 믿고 살고 있다.
촉은 저절로 일어서서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 안테나처럼 촉을 세워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윗니가 몽창 빠지는 꿈을 꾼 것은 생각 한 구석에 항상 집과 가족,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도 한몫하지만, 자식된 도리를 잘 못하고 있다는 것, 다른 가족들마저 보지 않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가족이 있으면서 만나지 않는 부재감 등 일체의 마음은 '촉이 곤두서다'라는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 인간의 촉은 무서울 만큼 예리하다. 단지 지금껏 안전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예리한 촉을 세우지 않고 있어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불면의 날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인가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없고, 감정표현이 솔직하지 못해 서툴러졌다. 그러다 보니 흥이 날 리가 없고 먹는 음식이 맛이 좋을 리가 없다. 배가 고파도 무언가 식욕을 돋우는 것을 찾기 보다는 '대충 떼우자'는 마음이 앞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한군데에 촉을 세우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평화로운 상황에서도 수시로 근처를 두리번 거리는 미어캣 같은 상황을 닮았다. 내 신상에 아무 일이 없지만, 뭔가 크나큰 위험이 다가왔음을 짐작하고 어쩌하지, 어떻게 하지,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불길한 건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편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이자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는 그의 책 <원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면 걱정해야 한다.
걱정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것이 잘못될까 걱정하는 것은 당신을 보호해주고
걱정하지 않으면 문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가 비상계엄이 터졌고, 구속되었으니 이제 걱정없다고 했다가 그 괴물이 풀려났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는 지금, 어떤 것이 잘못될까 걱정하는 것은 '촉'이 되어 나를, 우리를 보호해 준다. 그런 걱정이 모이고 모일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닥터둠이라 불리는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이 사랑을 받는 건 세계경제를 비관하면 할수록 그에 대비해 '준비'를 하기 때문에 결국 그의 비관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다시 말해, 그의 비관에 대응할수록 세계경제가 선순환이 되는 효과를 얻게 되어서다. 기업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하는 '레드팀red team' 이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다.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찾아내고, 없는 걱정을 사서 만들어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대재앙의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과가 뻔한 탄핵 선고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건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걱정과 촉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되고 세력이 되어 심판 선고를 앞둔 이들이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할 기세가 된다. 우리가 염원하는 것 또한 '간절히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촉을 세우면 기대를 져버리지 않더라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내면 속의 나는 내 인생의 인도자다. 지금은 나를 믿고 나의 바람대로 집중해야 할 때다. 나의 촉은, 그리고 지금 당면한 문제에 대한 친구의 촉은 틀림이 없으니, 믿어도 좋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