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한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말씀이 지금의 상황에 잘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다 보면 크건 작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누구나 죄를 짓는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 그만큼의 댓가를 치르고 반성을 할 기회를 얻는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래 왔었다. 죄인이 죄를 지으면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중하고 큰지를 알고 '몰래, 아주 몰래' 죄를 지었다.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그 죄를 조금이라도 사함을 받으려고 바로 반성하고 뉘우쳤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은 그런 자정작용 그러니까, 인간세상에 사는 인간으로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그래서 때로는 온정의 손길도 기대할 수 있는 과정을 잃어버렸다. 잘못을 해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떳떳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상대로부터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게 하는 상황이 거듭되었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그런 적 없다는 듯 뻔뻔하게, 때로는 겁박하면서 모면하려는 행동들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눈을 뻔히 뜨고 있는 채로 정의를 잃어버리면서 시시비비를 가릴 의욕조차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무기력해져갔고, 점점 '학습된 무기력감'에 현실직시능력마저 둔감해져 갔다. 다행스럽게도 오만한 정부가 친위 쿠테타를 벌이고 시민들이 잘 막아낸 바람에 이러한 무력감은 위기감으로 돌변했다. 말 그대로 시민들이 '대오각성'을 한 것이다.
그렇다,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죄에 둔감해져버린 영혼은 용서할 수 없다. 제가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영혼들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순한 영혼들이 더 이상 전염되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그런 일들이 가능할지 여부가 가려질 시간이 열흘 남짓 남았다.
기본적으로 시민이 정치에 대해 의식할 정도가 되면 사회 시스템의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말로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6개월 동안은 예전의 평화로움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시민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정치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참정하여 투표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때 우리의 매일을 지켜줬던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도 시민의 스트레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