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의 거장'이라 불리는 논픽션 작가이자 빌딩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서재로 만든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이 60이 넘자 픽션, 즉 소설 읽기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자신이 죽을 날을 예상했을 때 '읽을 수 있는 책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소설은 그만 읽기로 했다는 것이다. 인물을 인터뷰 하게 되면 인터뷰 전에 그 인물에 관련된 책을 모두 찾아서 읽고, 책 한 권을 쓰면 관련서 100~200권 정도를 읽은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논픽션 작가다운, '그' 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다른 생각을 했다. 그가 제대로 '죽음을 인식했다'는 점이다(실제로 그는 이후 '임사체험'에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다).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명확해진다. 즉,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화무십일홍' 이라 했던가. 제 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을 넘겨 예쁘지 못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황후장상도. 호의호식도 부질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부자라고 하루 열끼를 먹는 것어 아니고, 제 아무리 좋은 음식도 이빨이 성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소박한 반찬일지언정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함께 먹을 식구( 말 그대로 食口) 와 함께라면 만찬이 따로 없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할 일이다. 지은 죄가 두려워 잠못 든다면 황금이불보가 무슨 소용일까. 잠을 청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 사지를 쭉 뻗어 늘어뜨리고 천정보며 잠들 수 있다면,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사람이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탐 크루즈가 뱀파이어로 분했던 영화<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그 귀신이 가장 부러워했던 건 '인간의 유한한 삶'이었고, 엇비슷한 나의 브래드 피트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죽음을 앞두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이야기 했다.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 뒤집어 말하면, 죽음이 있어서 삶이 소중한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사람에게 거리를 두지 말고 곁을 줄 일이다. 빌붙지 말고 어깨를 빌려줄 일이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할 일이다. 남기려 하기 보다는 약간 더 손해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려 따지지 말고 차라리 침묵하며, 무표정한 대신 잘 웃고 잘 울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내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 그런 나를 지켜줄 사람이 곁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미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살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