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하산 미나즈는 어린 딸을 학교에서 사진을 찍는 날에 데려다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딸은 콧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직접 콧물을 닦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스타벅스 빨대로 딸의 코에서 콧물을 빨아서 빼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를 위해서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물론 우리는 배우자나 부모님,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들이 선택하여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 몇 년 동안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땅에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를 부모로 선택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로 선택했고, 우리가 그들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단지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일부다. 아이들은 우리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는 가장 딱딱한 머리를 부드럽게 하고 가장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관계는 변하겠지만, - 몇 년이 지나면 하산은 더 이상 빨대로 아이의 콧물을 빨아내 주지 않을 것이다 - 변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무슨 일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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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공감하는 말인데,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무엇을 못할까?'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이성이 아닌, 거의 '본능'에 가깝다. 이럴진대 무엇을 못할까?
그 점에서 이 세상 모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가늠하고 평가할 자는, 아무도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적절하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길 밖을 나가 보면 마른 사람보다 뚱뚱한 사람이 더 많듯, 반려동물 특히 강아지들을 보면 뚱뚱한 강아지들이 정말 많다. 그 이유가 뭘까? 앞서 말한 보호자가 강아지를 사랑하지만,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사랑스러우면 더욱 오래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예쁘다고 자꾸만 먹을 것을 준다.
동물 사료가 있는 것은, 해당 동물에게 가장 적절한 식량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매일 사료를, 아니 사료만 적절하게 주면 건강하게 오래 살 텐데, 내 강아지가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자꾸만 먹을 것을 준다. 게다가 사료가 아닌 사람이 먹을 것을 준다. 가족이 혼자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여럿이면 사람 수만큼 먹을 것을 강아지에게 먹인다. 그러니 살이 찔 수 밖에.
사람이 먹는 단짠 음식에 길들여진 강아지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저희들 사료를 먹을 리가 없다. 사료를 안먹으면 하루 이틀 굶기면 배가 고파서 다시 사료를 먹을텐데, 보호자의 사랑이 뻗쳐서 내 사랑하는 강아지가 굶어 죽을까 두려워 또 다시 온갖 맛난 것들을 먹인다. 그러니 살이 더 찐다.
강아지들이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허리를 다치고, 무릎을 다친다. 그래서 도통 걷지를 않으니 보호자들은 아예 전용 유모차를 들여서 강아지들을 태우고 다닌다. 이 역시 사랑이 잘못 뻗친 것이 아닐 수 없다.
보호자의 과한 사랑에 많이 먹고, 게다가 인간의 음식을 과하게 먹은 강아지들은 살이 찌고 더 쪄서 나중에는 이른바 성인병을 달고 산다. 이 모든 것이 보호자의 과한 사랑 때문이다.
반려동물 이야기를 이렇듯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외로운 어른들이 반려동물을 '자식'대하듯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 역시 이와 비교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나의 생각이 지나친 걸까?
자녀를 무한대로 사랑한다면, 그럴수록 자녀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자녀가 부모가 없을 때에도 꿋꿋하게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어서다. 그런데, 자녀를 나무라지 못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그래서 '자녀 앞에서 쩔쩔매는 부모' 를 보노라면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다. 이것은 분명 부모의 어긋난 사랑이다. 나도 내 아이를 사랑한다. 무척 사랑한다. 그래서 늘 엄한 모습이다. 이 세상에 내 아이에게 엄할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니까.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