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안 쓰죠. 대게 아침이나 오후 무렵에 글을 씁니다. 밤이면 무척 현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지속은 안 돼요. 오래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죠. 작가들이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 법에 대해 쓴 소소한 글들을 늘 보고 있습니다.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숙취에 시달리든 팔이 부러졌든, 그 사람들은 그저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자기들의 작은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우지요. 머리가 얼마나 텅 비었건 재치가 얼마나 달리건, 그들에게 영감 따윈 허튼소리, 찬사는 보내지만 그들이 쓴 책은 조심스럽게 피하겠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굳이 영감이라고 명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 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 의도적인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전혀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어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아요.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됩니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 쓰는 것도 안 돼요.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학교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입니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하죠. 이게 효과가 있답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에요.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
(레이먼드 챈들러,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p55~57)
위의 글은 최고의 추리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챈들러의 팬을 자처하기도 하는데요, 이 글을 들어 젊은 시절, '챈들러 방식'이라는 제목의 소소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이 글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바로 이 편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하루키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글을 읽었다는 말이죠.
챈들러 스타일은 한 마디로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짓도 하지 않거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견 공감이 갑니다. 글을 쓴다고 앉아 있다가 의도하지 않는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을 모두 허비하니까요. 글을 쓰는 시간에는 쓰던가, 아니면 쓰지 말고 멍하니 있으란 말입니다. 그럼 멍하니 있다 지쳐서 결국 쓰게 된다.. 는 뜻이겠죠.
여기서 방점은 챈들러 역시 '글 쓰는 시간'을 두었다는 겁니다. 그는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글을 썼습니다. 그 시간에 글이 떠오르지 않으면 안 쓴 거죠.
글쟁이가 되겠다면,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남들도 하는 할 것 다 하고 나중에 글을 쓰겠다면, 하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건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하고, 드라마 보고 나서 책을 읽는다고요? 그래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요?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꿈꾼다면 그건 정신병 초기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글을 쓰는 건 생각과 말을 내려놓는 일이지만 엄연히 말과 다릅니다. 심지어 녹음과도 다르죠. 왜냐하면 종이나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니까요. 게다가 멋쩍지만 고상한 말로 엄연한 '창조행위'입니다. 그런 일을 한다면 적어도 그 일에 쏟아낼 시간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면, 하던 일 중 가장 허접하고 비생산적인 일을 접어야겠죠.
제 경우엔 새벽 4시를 글 쓰는 시간으로 둡니다. 아이들을 독자로 소설을 쓰다 보니 어른의 것들이 내게는 필요가 없더군요. 그래서 늙은 친구를 만나 술 마시며 잡담도 하지 않고, 전화도 가급적 꺼립니다. 뉴스나 드라마 정도 보던 TV는 소설을 쓰면서 아예 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니까 TV 본 지가 2년이 넘은 셈이죠.
얼마 전 영화 '헌트'를 보려고 극장에 갔는데, 영화 시작 전에 쏟아지는 광고들을 보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더군요. 그러고 보니 광고도 안 봤습니다.
초등학생 아들 녀석의 키를 키우려고 숙제를 하다가도 9시면 잠자리에 들게 합니다. 투덜거리는 녀석을 달러려고 함께 책을 읽다가 잠을 청합니다. 그래서 최근 2년 동안 한밤중 커피도 없고, 그 맛있다는 야식도 없었습니다. 일찍 자는 바람에 아무것도 안 먹고, 많이 자니 신진대사가 좋아져서 살이 빠집니다. 2년간 8킬로 정도가 빠진 듯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씻고 커피 한 잔 마시며 3시간 정도 바짝 글을 씁니다. 세상이 잠든 시간, 그 흔한 광도 메시지도 없는 시간입니다. 몰입이 잘 되니 시간도 잘 갑니다. 아이를 깨우는 7시가 왜 그리 원망스러운지요. 이런 느낌이라면 두어 시간 더 쓸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 <행복한 부자학교 아드 푸투룸>1권과 연말 즘에 출간될 <행복한 부자 학교 아드 푸투룸>2권의 원고는 그 시간에 탄생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글을 쓸 시간'을 내세요.
맨해튼 재즈가 흘러나오는 스벅에 앉으려고 일부러 시간 내지 마시고, 당신이 가장 편하고 가능한 시간을 만드세요.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세요. 뭘 쓰냐고요? 챈들러가 말했잖아요. 쓸 게 없으면 암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럼 결국 쓰게 된다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