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잘 치렀고, 문제도 잘 풀어냈다. 시험지를 가져왔으니 결과는 금방 알 수 있는데, 지난 해 처럼 결과발표까지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로 했다. 시험 결과를 빨리 안다고 해서 변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타인들은 조급한 마음이 들 만큼 궁금해 하겠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불 살랐다고 할 만큼 노력해서...그래서, 지쳤다.
어른의 시험이란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젊었을 때 이 공부를 했다면, 5배 정도는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던 시절이었고, 몸이 쉬이 지치지도 않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때 이 공부를 했다면, 시험문제가 훨씬 훨씬 더 쉬웠을 거라서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딱히 슬럼프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울 만큼 이 공부에 열중했다. 그랬지만, 공부하고 돌아서면 늘, 낯설었다. '내가 공부를 하긴 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거의 일 년을 쏟아부은 공부에 몸과 정신이 많이 지쳤다.
'한동안 종이책일랑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딱히 할 게 없이 심심해지자 나는 다시 읽을 책을 뒤지고 있었다. 스스로였지만 어처구니 없었다.
이런 저런 읽을 책을 뒤져보니 또 열 권이 훌쩍 넘었다. 그 중에서 정말 정말 읽고 싶었던 것, 그리고 시험공부를 하는 중에도 '이 책은 당장 사놓지 않으면 평생 못 읽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산 책들을 골랐다.
그 중에는 '우먼 인 더 캐빈'이 들어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영화로 떴는데, 나는 늘 그렇듯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래서 영화가 보고 싶어서라도 빨리 읽어야 한다. 아들 국어 공부용 책도 읽을 게 몇 권 있고, 한강 작품 <소년이 온다>도 또 읽으려고 한다. 그 재미있다는 <혼모노>도 샀는데, 그것도 읽을려고 한다.
아내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이탈리아로.
꽤나 열심히 공부한 나를 위해, 올해 6학년인 아들의 초등 마지막 여행을 위해, 그 모든 걸 지켜본 아내 자신을 위해 떠나자는데, 가기로 했다. 아니, 이미 몇 개월 전에 홀로 예약을 해 둔 터라 군소리 없이 따라가야 한다. 열흘 간 간다는데....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는 것도 좋지 싶다. 오가는 비행기 속에서도 이 책들을 읽을 작정이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로마 편도 이탈리아에 착륙하기 전에 읽어둘 요량이다.
열심히 했으니, 쉴 때는 쉬어 줘야 한다.
돈은 이런 때, 이런 데에 쓰라고 버는 게 아니던가.
여행상품에 소개된 이미지들을 보니 많이 설랬다.
여행은, 이렇듯 떠나기로 마음 먹은 때 부터 시작된 게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