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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아빠의 투자 이야기 (2편)

어릴 적 나의 기억 (저는 가난이 싫습니다)

저는 가난이 싫고, 두렵다고 했었습니다.


제가 가난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계기를 적어 볼까 합니다.




초등학교(저는 국민학교 시대이긴 합니다만) 어린이날로 기억이 됩니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큰 유흥 중 하나가 

바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론 그때도 놀이공원에 가족들과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이들도 있었겠지만요)


당시 인기 개그맨 '심형래'씨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우뢰매'를 보러 가고 싶었습니다.

입장료 500원을 달라고 엄마에게 오전 내내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말이 없으셨고 결국 동네 다른 녀석들은 다 같이 극장에 다녀왔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던. 


한 없이 울면서 집에 있는 TV로 어린이날 특선만화로 대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 유희 활동 중 하나가 

하교 후 친구들과 흙먼지 날리는 농구골대 밑에서 하는 농구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브랜드' 아니, 

'메이커'로 불리는 농구화에 대한 구매와 자랑이 유행을 했었죠


농구를 좋아했던 저 역시 그 대열에서 빠지기 싫었고, 지기 싫었습니다.

(쓸데없는 중학생의 경쟁심이었죠)


'나이키'운동화를 사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니 계속 졸랐었습니다. 


마침 제 발이 커져서 운동화를 교체해야 하는 때가 와서 

엄마와 같이 자주 들렀던 시장에 가 봅니다.


얼마나 설레었던지. 나도 이제 '에어 조던'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은 꿈.. 


나이키 매장을 들어섰을 때 그 설렘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참..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운동화의 디자인을 보지 않고 가격표만 자꾸 보셨던 엄마의 얼굴을 보고, 

사지 못하고 돌아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나 엄마나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가난"


내가 사는 집은 "가난 하구나" 가난하기 때문에 

메이커 신발을 살 수 없고, 사면 안되는구나..


그때 이후로 성인이 되어 제 손으로 돈을 벌 때까지 

단 한 번도 '졸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지출 통제"라는 재테크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몸의 기억으로

절약과 통제가 습관화된 삶을 

지금까지도 살아오게 된 계기가 된 듯합니다.


만약, 제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반감으로 

'나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소비를 하는 것을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면, 

아마 지금처럼 '밥 먹고 살기 편한'정도의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을 듯합니다.


(물론, 저는 아직 부자는 아닙니다.)

다만, 부자가 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새벽에 운동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오늘 문득 운동화를 보며, 

이제는 하나 바꿔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 10년 가까이 신었던 운동화입니다..

운동화, 심지어 속옷 한 장도 아직 저에게는 닳고 헤어져서 사용 못할 때까지 써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아내는 가끔 너무 궁상떤다고 핀잔을 주지만 말이죠)


재 재테크 이야기의  그 처음은, 바로 '지출 통제'와 '종잣돈 모으기'가 시작입니다.



그걸 하게 된 계기를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적어 봤습니다.



부자아빠의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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