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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가?

(나의 퇴사기 그 서막)

내 나이 마흔넷. 


아직 퇴사를 논하기엔 물리적 나이나, 경제적 자산이나 한참 이르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올해 초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과 같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붙는 그런 퇴사가 아닌,

그냥 조직에서 필요 없고 불 필요한 인력으로 낙점을 받아 '권고사직'.


저는 개인적으로 세 곳의 회사 경험이 있습니다.


사회 초기 신입사원 시절은 설탕과 조미료, 지금은 나영석 PD가 유명한 C그룹 공채로 입사를 했었습니다.


그 이후 더 좋은 기회로의 이직 제안을 받아들여, 기름과 통신으로 유명한 S그룹으로 이직을 했고

그곳에서 사내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소위 말하는 '일 벌레'로 3년 가까이 보내며 인정도 받았고,

업무 역량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한 미디어그룹에서 나름 파격적인 Offer를 받았습니다.


높은 연봉 인상률과 Sing On Bonus와, 회사 실적과 무관한 개인평가에 따른 성과급 제안.

거기에 법인카드 사용 보장까지.. 


Owner 2세의 참모진으로 조인을 하여 마케팅 기반의 전략업무를 수행하는 업무담당자로써 말이죠.


덥석 물었고, 그곳에서 10년 넘게 일을 했었습니다.


그곳은 신문, 종편, 극장, 리조트까지 돈 되는 사업은 다 하는 원불교 기반의 미디어그룹이었습니다.


저는 신문 계열로 입사를 해 오너 2세의 수명 업무를 담당하였고, 이후 종편 개국 전 경영기획팀으로 전배 받아

나름 개국공신으로 주요 임원진들의 회의에 배석이 되어 '판돌이'업무를 길게 했었습니다.


이후 마케팅 조직 신설에 대해 오너 2세에게 직접 팀 셋업에 대해 보고를 드린 후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중,

다시금 신문의 경영기획팀으로 전배, 그곳에서 지금 신문의 전문 CEO의 수명 업무를 2년 가까이

주말도 없이 다양한 일을 받아 처리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디지털에 대한 중요도를 인식하면서 디지털 업무로 일을 배정을 받았고,

전 언제나 그랬듯 소신과 개념을 가지고 매사 보고에 임했습니다. 


잘못된 관행과 공급자 중심에서의 탈피, 독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 등

기존 어른들? 이 거북한 보고서를 종종 올렸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적들'이 생기더군요.


곳곳에 적들은 절 모함하고, 이상한 인간을 취급하면서, 내 보내기 위해 암묵적 따돌림

(학교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은따를 경험해 봤습니다.)


은따 생활 1년 이후 대 놓고 따돌리며, 이제는 부서의 후배 직원들도 없는 사람(투명인간) 취급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인사팀장과 경영지원실장의 호출을 받아 퇴사 압력을 받았습니다.


버텨 보자, 버텨 보자 다짐하면서, 이 악물고 상암동의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며 그렇게 견뎠지만


지금도 재직 중인 경영지원실장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쫓겨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사 전 2년여 동안 괴롬힘을 받았던 모든 설움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먹고살기 위해, 앞만 보자 생각하면서 지내 온 지 벌써 10개월이 되어가네요. 


나의 퇴사 이야기.. 


나의 직장생활의 이야기.. 


더 세밀하게 제 경험과, 예비 퇴사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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