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의 주인이 되었던 이유가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2009년 5월 8일,
눈을 뜨지도 못할 만큼의 통증이 밀려온다.
'어? 뭐지.. 손가락이 안 움직이는데'
힘겹게 눈을 떠보니 손깍지가 끼어지지도 않을 만큼 퉁퉁 부어 있는 손, 발.. 온몸이 퉁퉁 부었다.
'어....?'
안 되겠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싶었다.
어느 쪽으로도 일어나기 힘든 몸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 겨우 일으키고는, 어떻게 씻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씻고 병원으로 향했다.
마침 집 근처에 '통증의학과'가 새로 개원했기에 이 원인모를 통증의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다.
초진이기에 작성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웬걸, 손에 펜이 잡히지 않는다.
1분이면 쓸 초진기록지를 10분에 걸려 겨우 쓰고는 힘겹게 대기 의자에 앉았다.
한.. 15분쯤 지났을까?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니 깔끔하고 차분한 진료실에 의사 선생님께서 문진으로 진료를 시작하셨다.
통증이 어떻게 어디에 있는지 언제부터 이랬는지 등등 다양한 문진을 하고 혈액검사와 여러 검사들을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대기실에서 눈도 풀린 채 앉아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호명이 되어 들어가 들은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했다.
"지금 검사 결과를 보니 환자분은 난치병인 듯합니다. 근육과 신경에 통증이 생기는데, 통증의 역치가 낮아 외부 자극이 없어도 아무 이유 없이 몸이 아픈 거예요.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병이라 유전은 아니니 염려 마시고 약을 일주일치드릴 테니 일단 드셔 보시고 다음 주에 상황을 지켜보죠. 자세한 병에 대한 내용은 아마 인터넷에 검색하시면 나올 거예요.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고 차분히 한 번 보세요"
".............. 네. 감사합니다....."
병원을 어떻게 나왔는지 약국을 어떻게 갔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도 기억이 없다.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어버이날인 그날 나는 부모님께 나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세상에 이런 불효가 또 있을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병명이, 그것도 난치병인 그 병의 주인이 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통증’이라는 새로운 또 다른 나의 일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게 말이다.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없었다.
근육의 문제라기에 평소에 하던 스트레칭을 더 열심히 하고 운동을 진짜 열심히 했더니 결과는 참혹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운동하고 병원을 가니,
선천적으로 인대도 약한 데다가 이렇게 운동하면 인대 파열이 오니 그저 걸으란다. 이 병은 그렇게 근육을 쓸수록 더 아프니 가볍게 걷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런데 약은 어땠냐길래 약 먹고 원래 속이 별로 안 좋아지는 거냐고, 빙빙 돌고 길가다 구토하며 쓰러질 뻔 하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너무 힘들었던 나의
출근길 에피소드를 전하니 약을 또 바꿔주시면서 이 병의 권위자인 교수님이 계신 대학병원으로 가자신다.
.... 케이스가 꽤 심하다고...
'음, 그렇구나. 내가 좀 많이 아픈가 보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울기만 했지 내 앞에 펼쳐질 고통은 단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더랬다.
그렇게 나는 류마티스내과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되었고, 통점 검사를 시작으로 진료를 시작하는데 본 진료도 시작되기 전 나는 검사실에서 실신 직전인 상태로 울다가 나왔다. 손을 대기만 해도 울고 있으니 검사하시던 전문의 선생님도 놀라셨을 정도로 통증의 역치는 바닥이었고 20군데가 넘는 통점에 5군데 정도를 뺀 모든 부위에 통증을 느꼈다.
역시나 교수님도 검사 결과를 위의 선생님과 비슷하게 말씀하시더니 이 병 중에서도 꽤 심한 상태라며 약을 처방하고 한 달 뒤에 보자시며 병원을 나서는데, 울 힘도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지고 맥이 풀렸다.
'어떻게 하지?...'
난 아직 20대인데, 살아갈 날이 이렇게나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걱정이 가장 컸다.
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 하나 너무 억울했다.
그저 열심히 산 죄밖에 없었을 시기였기에, 특히나 이런 진단은 나에게는 그저 사형선고로만 들렸다.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았고, 몸도 마음도 더 피폐해지고 점점 상태는 악화되었다. 약을 못 버티고 밤새 구토와 실신을 반복하고 입맛은 하나도 없어 사흘을 물만 마시기도 했다. 살은 계속 빠지고 산 송장처럼 지냈다.
이 과정을 1년을 반복하니, 이대로 살다가는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약이 독하니 위장은 다 뒤집어지고, 안 그래도 안 좋던 위는 구멍 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도저히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에 붙들려 있기를 수 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지도 오래인 지금.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지은 업을 내가 받고 있나 보다.
내 몸을 아끼기보단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으며 살았으니.
공부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그렇게 혹사시키고 살았으니 멀쩡해도 이상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아픈 건 진짜 너무 세게 받은 느낌이었지만, 아마 이 생의 업만은 아니리라.
전생에 스스로 지은 죄가 많았나 보다. 그 업을 스스로 받느라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드.
조용히 생각하고 명상 음악을 들으면서 해답이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과 그 과정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답이 없던 내 삶에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랄까.
아이들을 오랜 시간 가르치며 아이들이 힘든 건 죽어도 못보면서 내가 아픈 건 괜찮다며, 이정도는 충분히 참을만하다며 가볍게 생각했기에..
온전히 나를 위해 생각이란 걸 하는 그 시간은 꽤 낯설었고, 그저 눈물로 밤을 지새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다보면 얼마나 내가 나를 못살게 굴었으며, 못되게 굴었는지 한편으론 반성도 많이 하게 된다. 아니지, 이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찌됐든 지금의 나는
몸이 아프면서 내 맘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그저 원망만 했던 나를 안쓰러워 하며,
다 망가진 마음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하나씩 회복하기 위해 이제부터 글로써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볼까 한다.
누군가는 이 글 하나에 희망을 얻기도 하기에.
그 실낱같은 희망을 나누고 싶다.
더불어 13년차 강사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너무나 쉼없이 달리던 이야기도 곧 시작됩니다.
_coming soon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