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선생님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1인-
_아픈 이야기만 하기엔 너무 무겁기에,
어찌하다 강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볼까합니다_
이상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들께서 어디 가서 사주를
물어보시면 ‘평생 공부할 팔자’ 라든가,
’연구원이나 선생(혹은 교수)를 할 팔자‘ 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그 직업을 너무나 갖기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
짊어질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버겁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_
우리 담임 선생님은 전교 1 ,2등이 있던
우리 반에서 최상위권에 드는 아이들만 챙기셨고,
전교 10권 밖의 아이들은
진로상담, 학업상담 등에
썩 성의가 없었다.
내 기억으론, 나도 그 상담을 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다.
맨날 노는 거 같아 보여도 반에서 7등 안에 들었고,
잘하는 때는 2,3 등도 하면서 나름 공부에
소질이나 일가견이 있다 생각했다.
학군지의 고등학교에서 그 정도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이렇게 차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러웠고 막막했다.
입시를 코앞에 두고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고,
우리 부모님은 ‘자율’적인 학습을
추구하신 분들이기에 딱히 얻을만한 정보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일찍 알게 되었고,
그 무게를 내가 짊어지고 갈 자신이 없었기에
나의 미래 직업 리스트에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재밌는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정말 눈꼽만큼도 선생님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마침 우리 학과는 ‘교직이수’가 가능한 과였고,
하필 나는 그 교직이수를 이수할 수 있는
조건에 ‘만족’하였으며,
같이 다니던 동기 언니에 의해
‘교직이수 신청’을 해버렸다.
그리고 덜컥, ‘통과’가 되었다.
신기하기보단 어안이 벙벙했고,
어찌됐든 기왕 통과된 거 열심히 이수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지금의 ‘갓생’을 실천하는
‘프로 계획러이자 실천러’였으며,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늘 깨어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기존 >전공 + 복수 전공 + 부전공>을 하던 차에
+ 교직이수라니.
하하하.
내가 홍길동이 되어 10개의 몸이 생겨나길
바라던 시절이었다.
결국 부전공을 포기하고, 복수전공을 택하며
교직이수를 꽤 성공적으로 마쳤고,
나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절.대’ !!
선생님이라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을
하지 않겠다던 나였는데,
교직이수를 하며
‘교생실습’을 나갔다 온 뒤로
나의 계획은 싹 바뀌었다.
-‘RESET'-
4년동안 짜 놓은 계획과
진행되고 있던 모든 일들은
그 한 달의 교생실습으로
모조리 포기하였고,
그렇게
내 인생에서 버려졌다.
마침 나는 교생실습에서 고3을 담당했고,
마침 또 나는 다른 교생실습생보다
수업을 꽤 많이 진행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로 ‘연구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연구수업을 하며
교장, 교감, 연구부장 선생님들 앞에서
떨기는 커녕 활짝 웃으며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대체 왜지?
진짜 이유를 모르겠어서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을 했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나는 묘한 희열을 느꼈고,
고3인 아이들의 진로상담, 고민상담, 학습상담을
자발적으로 진행하면서
너무나 큰 보람을 느꼈다.
________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이 보람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로 인해 내적 만족감을 채워가는 사람이구나‘
__________
그렇게 나는 ‘공부’와 가까운 곳에 있기로
마음 먹고
내 미래를 다시 써 내려 가기로 했다.
.
.
.
_2편에서 계속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