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효도여행
명절, 추석이다.
우리 집은 명절마다 가족여행을 간다.
9년? 10년 전쯤부터 나의 제안으로 명절의
차례를 패스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아무리 좋은 선물도 ‘추억’은 이길 수 없단
생각에 제주도부터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했다.
오늘,
아니 어제,
이제는 지난 주가 되어 버린,
우리의 명절은 이번에도 타국에서 보냈다.
떠나오기 전부터 내 컨디션때문에
과연 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를
수 백, 수 천 번을 고민했다.
계속되는 열과 최근 심해지기 시작한 편도선염때문에
주사와 약을 써도 도무지 답이 없어서.
게다가, 출발 이틀 전
왼쪽 무릎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발을 디딜 수조차 없어서 덜컥 겁이 났다.
신경을 쓴 탓인지 구내염,
위경련까지...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한
콤보 증상들이 와다다다 나오면서
출발하는 새벽에 눈을 뜨기 전까지도
고민한 듯 하다.
그럼에도 내 선택은 ‘GO'.
어렵게 시간 내주신 아버지와
이 여행의 설렘을 한껏 만끽하던 어머니의
기대와 노력을 저버릴 수 없으니.
그리고 생각보다 모든 것은 견딜만 했고,
잘 견뎌내는 중.
아! 물론 캐리어의 1/4을 약으로 채운 덕분이다.
약발 + 정신력(이라 쓰고 ‘깡’이라 읽는다)의
환장의 콜라보 덕분인 게 확실하다.
(나의 여행 짐의 50%는 약이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의외로 가볍다)
부모님의 상기된 표정과 웃음을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나기도 하고,
뿌듯하면서도 이 두 분을 편히 모시고
다니려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기에.
나는 아파도 아프지 않았다.
아플 수 없고, 아파서도 안된다.
시간대별로 약을 먹느라
가뜩이나 꽉찬 배가 숨쉴 틈이 없음에도.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아직은 내가 두 분을 케어해드릴 수 있어서.
그게 내 최대의 목표이자 목적이니
그거면 됐다.
두 분의 기억 속에 오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인 걸로 충분하다.
특히나 추석은 우리에겐 너무나 가혹했던
시간들이 많았기에,
어쩌면 오늘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지도...
Anyway,
마음 같아서는 이보더 더 한 것들도
해드리고 싶은 맘이지만,
따라주지 않는 몸이 야속할 뿐이다.
그렇다고 미워만 하기엔, 대견한 나의 몸뚱이니까.
난 또 그렇게 감사하며, 안도하며
오늘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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