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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i의 마음일기 Sep 24. 2024

[투병일기]18. 희망과 현실의 괴리

feat.효도여행

명절, 추석이다.


우리 집은 명절마다 가족여행을 간다.

9년? 10년 전쯤부터 나의 제안으로 명절의

차례를 패스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아무리 좋은 선물도 ‘추억’은 이길 수 없단

생각에 제주도부터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했다.


오늘,

아니 어제,

이제는 지난 주가 되어 버린,

우리의 명절은 이번에도 타국에서 보냈다.


떠나오기 전부터 내 컨디션때문에

과연 이 여행을 갈 수 있을까를

수 백, 수 천 번을 고민했다.

계속되는 열과 최근 심해지기 시작한 편도선염때문에

주사와 약을 써도 도무지 답이 없어서.

게다가, 출발 이틀 전

왼쪽 무릎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발을 디딜 수조차 없어서 덜컥 겁이 났다.


신경을 쓴 탓인지 구내염,

위경련까지...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한

콤보 증상들이 와다다다 나오면서

출발하는 새벽에 눈을 뜨기 전까지도

고민한 듯 하다.


그럼에도 내 선택은 ‘GO'.

어렵게 시간 내주신 아버지와

이 여행의 설렘을 한껏 만끽하던 어머니의

기대와 노력을 저버릴 수 없으니.

그리고 생각보다 모든 것은 견딜만 했고,

잘 견뎌내는 중.


아! 물론 캐리어의 1/4을 약으로 채운 덕분이다.

약발 + 정신력(이라 쓰고 ‘깡’이라 읽는다)의

환장의 콜라보 덕분인 게 확실하다.

(나의 여행 짐의 50%는 약이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의외로 가볍다)


부모님의 상기된 표정과 웃음을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나기도 하고,

뿌듯하면서도 이 두 분을 편히 모시고

다니려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기에.

나는 아파도 아프지 않았다.

아플 수 없고, 아파서도 안된다.


시간대별로 약을 먹느라

가뜩이나 꽉찬 배가 숨쉴 틈이 없음에도.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아직은 내가 두 분을 케어해드릴 수 있어서.

그게 내 최대의 목표이자 목적이니

그거면 됐다.


두 분의 기억 속에 오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인 걸로 충분하다.

특히나 추석은 우리에겐 너무나 가혹했던

시간들이 많았기에,

어쩌면 오늘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지도...


Anyway,

마음 같아서는 이보더 더 한 것들도

해드리고 싶은 맘이지만,

따라주지 않는 몸이 야속할 뿐이다.

그렇다고 미워만 하기엔, 대견한 나의 몸뚱이니까.

난 또 그렇게 감사하며, 안도하며

오늘을 보내본다.


https://brunch.co.kr/@richjubi/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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