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에세이(4) - 큰딸의 무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성인이 된 시기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적기 전에 유년과 청소년기에 형성된 나의 자아에 대해 조금은 더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어떤 이유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보통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알게 되지 않나.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일관적으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다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을 무심코 해 왔다.
얼마 전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하다가 놀란 점이 있다. 딸기와 랑이 둘 다 자기들은 지금이 너무 좋아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낸다는 증거일까? 그렇다면 엄마로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반면 다르게 보면 어른으로 사는 삶이 많이 힘들어 보여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고 그리 생각하게 된 근거가 무엇이든 어찌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그저 매일 보는 아이들을 한 번 더 안아주고 예쁘고 귀엽다고 얘기하다가, 나를 화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버럭질을 시전할 뿐이다.
암튼, 내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주된 이유는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을 벌어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까'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이나 지나야 성인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어른이 되는 시점이 가까워온다는 것에 설레었다.
아빠는 나를 포함한 네 남매를 무척 예뻐하고 사랑하셨지만, 함께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셨다. 아이들이 좀 자란 이후에는 뭔가 서먹서먹한 부녀 지간이었다.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40년 가까이 직장에 다니셨고, 그 외 여가시간에는 자신의 취미 활동이 중요한 분이었다.
아빠는 가정에 소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 커 버린 아이들에게 다정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 시절 다른 가정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육아는 엄마가 전적으로 하셨다. 아빠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 대신 칭찬하지도 않았으며, 어떻게 하라고 지침을 내리거나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 아빠에게 혼났다고 하는 친구들이 매우 신기했었다.)
아빠는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셨다. 아빠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부재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게 된 것은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아버지의 존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 아버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과제였을 것이다. 평생 가족을 부양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셨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가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하게 가족을 살피는 편이 아니었던 것은 맞지만 어떻게 마음을 표현하는지 모르셨던 분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는 그 시대의 어머니답게(?) 가족에게 희생적이고 알뜰했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일곱 식구를 건사하느라 분주하셨다. 엄마가 틈틈이 우리, 특히 큰딸인 나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는 '여자라도 꼭 자신의 일이 있어야 한다. 살림도 좋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너는 첫째기 때문에 네가 잘 돼야 동생들도 잘 된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제 대학생 되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 용돈은 안 주는 거야'라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정말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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