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용돈의 기억

머니 에세이(5) - 대학생이 되다

by 리치레몬


나는 학창시절 내내 성적도 성격도 교우 관계도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다.



국민학교(...) 때는 늘 우등상을 받았지만 그 때 공부 못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고, 영재가 아닌 이상 공부 안 하고 시험을 보면 성적이 안 나오는 중학생 시절에는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특별히 놀거나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별로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주로 멍 때리며 엉뚱한 상상을 하거나, 교과와 관련없는 책을 보거나, 엄마가 다 읽고 난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 것을 좋아했다.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나는 늘 세상이 궁금했고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신문과 뉴스를 열심히 보거나 중학생이 읽기엔 난해했을 세계 명작을 읽으며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었다.



이런 새로운 세상과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또래 친구들과 공유하거나 공감받지는 못했다. 지적 허영이 있었던 십대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중학교 졸업 후 신도시로 이사라는 것을 처음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 이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던 것 같다. 마음에 맞는 여러 친구들과 즐거운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그래도 분별이라는 것이 생겨 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겠다고 처음으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2학기 때부터는 내 인생 최초로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고, 벼락치기 공부가 나름 효과를 발휘해서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성적이 급상승하였다.



수능을 보고 본고사 준비를 위해 학원을 등록하고 준비하다가, 혹시나 해서 넣어본 특차에 덜컥 붙었다. 비평준화 지역 고교를 나왔기 때문에 내신은 좋지 않았지만,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수능 결과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떨어질 줄 알았던 특차에 붙고, 합격을 확인하기 위해 아빠, 엄마와 함께 서울로 외출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까지 혼자서 멀리 외출한 일이 거의 없었기에 부모님을 따라 버스에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신기해 하며 학교에 갔던 것이 떠오른다. 아빠와 엄마는 참으로 기분이 좋으셨고,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첫 삐삐를 개통해 주셨다. 검은 색 삼성 위드미, 지금도 그 삐삐의 이름과 생김새가 떠오른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나는 목표를 달성했다 싶어서, 언제 열심히 공부했냐는 듯이 신나게 놀았다. 다행히도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 기간에 공부하고 시험볼 때 어느 정도 글을 쓰면 그럭저럭 평균 정도의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이었다. (만약 공대나 외국어 계열 등,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학과라면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몇 가지 애로사항은 학교와 집의 거리는 멀고 - 역시 천만다행으로 엄청나게 돌아가지만 그래도 한 번에 가는 좌석버스가 있긴 했는데, 30-40분에 한 대 꼴로 와서 버스정류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용돈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친척 어르신들이 주신 축하금은 야금야금 써서 남아있지 않았고, 당시 내 한 달 용돈은 30만원이었던 것 같다.



매일 놀기에 바쁜 철없는 대학생에게 용돈은 확실히 부족했다. 전공 책을 살 비용은 엄마가 따로 주셨던 것 같은데, 교통비, 점심값, 통신비는 모두 용돈에 포함이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노는 비용도 필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업이 끝나면 선배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맥주나 레몬소주를 마시는 술자리가 있었고, 가끔 커피숍에 가거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관심을 갖기 시작한 화장품도 사야하고, 쇼핑도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용돈이 점점 작다고 느껴졌지만 용돈을 올려 달라고 부모님께 얘기하기는 어려웠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이고, 나는 동생만 세 명이었다. 공무원인 아빠의 빤한 월급으로 일곱 식구 살림을 꾸리는 엄마의 스트레스를 어릴 때부터 느끼며 살았기에, 용돈을 올려 달라는 말을 꺼내기는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제적 독립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식과 주를 부모님이 다 해결해 주시는데 독립이라 할 것도 없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것이다. 그저 이제부터 용돈이라도 자체 해결 해보려는 생각이었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역시 엄마의 은근한 압박이었는데, 대학가면 등록금은 엄마 아빠가 내줄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잔소리와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유달리 못 견뎌하는 내 성격상, 이제 용돈 달라고 구차하게 얘기하지 않고 '내가 벌어서 내가 다 쓴다'라고 패기 넘치게 생각했던 것이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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