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고군분투 육아독립기

머니 에세이(13) - 엄마도 워킹맘도 처음이어서

by 리치레몬


워킹맘으로서의 생활도 벌써 14년 차. 둘째 임신과 출산이 있던 10개월가량을 제외하고 늘 풀타임 직장에 다니고 있다.



공기업도 선생님도 전문직도 대기업도 아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기업이 나의 직장이다. 경쟁이 치열해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악명 높은 야근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모로 여성이 오래 다니기 좋은 업계는 아니다.



그래도 10년 전에 출산했던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육아휴직은커녕, 90일의 출산 휴가를 온전히 보내는 정도면 괜찮다는 식이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요즘 후배들은 출산 휴가에 더해 1년의 육아 휴직은 무리 없이 다녀오고 있다.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회사에는 수유실이, 회사 인근에는 어린이집이 생겼다. 주 52시간 근무를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야근도 많이 줄어든 편이다.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돌이켜 보면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를 따라 업계와 회사 분위기도 참 많이 바뀌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천천히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로는 일을 통한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작게는 일을 놓으면 사회적인 모습의 나를 잃을 것 같아 다닐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래 다니자는 마음도 있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물질적인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가 되었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인 것은 기본)



첫째를 낳았을 때는 남편이 해외 장기 파견 중이어서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살며,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 주셨다. 3년 뒤, 둘째를 낳고 재취업을 하며 육아 독립을 위해 고심하였다. 친정에 더 부탁할 수는 없었고, 시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아이를 주말에만 본다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입주 아주머니를 들였다. 입주 도우미를 고용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래도 살만 하구나 혹은 돈이 많은가 보네, 라는 반응은 육아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 시기가 오래전에 지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내며, 벌어서 남는 거 하나도 없겠네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아기를 맡겨? 와 같은 반응은 그나마 육아를 좀 경험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직 백일이 안된 아기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데 - 위에 적었듯이 20년 일했는데 육아휴직은 하루도 써보지 못한 1인 - 주 5일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하고,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돌아와도 저녁 8시 이후라면, 그마저도 퇴근시간이 유동적인 경우 다른 선택지를 찾기 쉽지 않았다.



7시 전에 문을 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마찬가지로 밤 8시까지 아이를 봐주는 기관도 거주지 인근에는 없었다. (있었더라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왕복 픽업이 큰 문제였겠지만)



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고 야근 많은 일을 하는 맞벌이 가정에서, 혼자 기관에 다닐 수 없는 아이 둘을 긴 시간 케어하려면 당시에는 입주 아주머니 외의 대안이 없었다.







입주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입주 아주머니가 평생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아이가 좀 자랄 때까지 몇 년을 버티면 도우미가 없어도 육아가 되는 시점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버티려면 누구 말처럼 '벌어서 남는 것 없이 다 갖다 드려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그 시기를 보내야 하는 것이, 육아독립 맞벌이 부부의 현실이었다.



입주 아주머니, 이후에는 하원 도우미 분들을 여럿 거치며 인건비까지 집안 살림 등의 생활비까지 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던 시기가 있었다. 10년 전이었는데 주 5일 입주 아주머니 월급으로 170만 원을 드렸고(시세 대비 많이 드린 것도 아니었던), 이후 하루 4시간 하원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80에서 100만 원이 월급이었다.



도우미 비용에 더하여,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국가와 지자체에서 육아 관련 비용이 잘 지원되지만, 당시만 해도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각종 예방 접종 비용하며(무료로 지원되는 것이 몇 가지 없었던), 인근에 국공립 어린이집도 없는 지역이라 큰아이 유치원비로만 한 달에 60-70만 원을 꼬박 3년을 지출하였다.



육아비 면에서 나라의 혜택을 본 것은 둘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2년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시절이었지만, 크게 봤을 때 육아 후배들은 더 나은 조건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것에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라고 쓰고 눈에는 땀이... ㅜㅜ)



이렇게 장기간 적지 않은 지출이 있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어 악착같이 버텼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육아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물론 각종 사교육에 집중했다면 또 다른 상황이었겠으나 일단 여기서는 패스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돈 모으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사실은 변명에 가깝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니, '돈은 있을 때 쓰면서 사는 거다'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이렇게 느슨해진 소비 습관이 기본이었던 데다가 정신없이 애 둘 키우면서 일한다고 받는 스트레스로 대부분의 지출은 정당화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모든 분야에 별 생각이 없는 지출이 이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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