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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Feb 14. 2021

에세이는 쓰기 어렵다

글쓰기에 대한 잡생각


나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했다. 활자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펼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었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또박또박 문장으로 적는 일은 아름답고 신기한 창작 활동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대부분 서툴렀기에 - 고무줄은 안 해봐서 그렇겠지만 하지 못했고, 손재주가 없어 그림이나 만들기 등의 미술도 잘하지 못했던 - 글을 통한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제법 받았다. 그때 가졌던 여러 가지 장래 희망 중에는 작가나 기자와 같은 글과 관련된 업이 항상 포진되어 있었다.



꿈은 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객관적으로 글쓰기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지 않을뿐더러, 이를 통해 밥을 먹기란 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여고생 시절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니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던 것 같기도)



물론 재능보다는 열정과 노력, 시간이 더 큰 비중으로 필요하며 그게 바로 성공의 열쇠라는 사실은 이만큼 살고 보니 당연한 일. 글쓰기를 위해 생계를 뒤로 하고 노력할 만큼 절실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계속하는 행동은 꾸준히 이어 왔다. 일기장, 수첩, 다이어리, PC 통신, 커뮤니티, 블로그...... 글을 기록하는 매개체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어딘가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행위'만큼은 지속하고 있는 것이 글에 대한 애정의 발로인가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작가도 칼럼니스트도 기자도 아니지만, 여전히 글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좋고, 최소 며칠에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써야 살맛(?)이 난다.



강산이 1.5번 바뀌는 세월 동안, 가장 유효한 글쓰기 수단은 블로그였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에서 참으로 많은 글들을 썼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글들이란 블로그 포스팅의 형태로,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쓰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었다.



이번 달에 아이가 어떤 말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한 육아일기에서 집안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상, 회사 다니며 겪었던 억울하거나 황당한 일들까지 세세하게 적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큰 위안으로 삼았고, 정신없는 워킹맘 생활을 십 년 넘게 이어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창구였던 것 같다.







꾸준하게 블로그를 지속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내 블로그를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가족, 친척, 친구, 소식을 모르는 동창도 있었다. 그나마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는 전혀 연결하지 않았기에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발생한 일이었다.



생업이 있는 직장인이고 블로그는 사생활이라 생각해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아이들 사진만 올려 왔는데 역시 좁은 세상이었다. 동네를 다니거나 여행을 갔을 때도, 아이들 얼굴을 보고 우리 가족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당황하기도 했다.



원래 알고 지내는 사람이 내 블로그를 알게 되거나, 혹은 평소 모르는 사이이지만 블로그를 통해 아는 랜선 지인이거나,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바로 '절대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는 것.



지인들은 종종 블로그에 들러 글을 읽지만 댓글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만나서도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예전에는 '다녀간 블로거' 기능이 있어 최근 방문했던 사람들을 열명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는 저 애들이 딸기랑 랑이네, 혹은 저 사람이 레몬이다! (라고 브런치에 쓰려니 매우 쑥스럽지만...)라고 알아보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지나친다. 이후 블로그에 '언제 레몬님 가족을 봤다'라는 댓글을 남긴다.



요즘처럼 대놓고 말로 하는 SNS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완전히 달랐겠지만, 당시의 젊은 나는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불편한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상대방을 모르고 어디까지 아는 지도 알 수 없는데, 혼자서 일방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지켜보면서 눈팅의 대상이 될 마음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개인 영역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사진을 공개적으로 리지 않을 계획이었기에, 더는 블로그에 남매 사진을 올리지 않거나 올리더라도 열람 가능 범위를 제한하였다. 사적인 얘기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일기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등장 없이 짧은 일상    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개인적인 공간이라 여겨 편하게 마구 휘갈겨 썼던 내 글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아이 둘 키우면서 양가 도움이 없이 힘든 직장 생활을 견뎌내느라, 당시의 나는 적극적으로 육아를 함께 하지 않는 남편에게 늘 서운했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남편에게도 다른 일을 해야 했던 상황과 사정이 있었고,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뾰족했던 내 감정과 힘듦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건 그 시절의 감정일 뿐이고, 남편 입장에서 무조건적인 진실일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내가 무슨 울트라 킹왕짱 능력 있는 선후배도 아니고, 내가 A라 생각하는 일을 누구는 B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모든 것은 그저 상대적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참 좋은 선배였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직장 생활에서 만난 최악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이런 수많은 일들에 대해 점차 신경이 쓰였고 지속적인 자기 검열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일상 이야기를 쓰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졌다.



시가 천재의 영역이라면,

소설이 수재의 영역이라면,

에세이는 조금 노력하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 또한 나의 오만이었다.



에세이는 쓰기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렇다. 그저 '나는 모자란 사람입니다'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나면, 언젠가 주변 시선에 상관없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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