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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Mar 12. 2021

재택근무가 주는 작은 위안에 대하여

코로나 시대의 추억이 될까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해서 정확히 몇 시에 끝날지 모르는 직장인의 삶을 산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그렇게 규칙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무려 20년이 되어간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혼자서 하는 업무가 많긴 하지만 회의나 외근도 제법 있는 일을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기에 사무실 출근은 당연한 일과였다. 연차가 쌓여갈수록 개인적인 용건으로 휴가를 쓰는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아서, 연말이 되면 매년 쓰지 못한 연차가 10개는 됐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어쩌다 쓰는 휴가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일리가 없을 터. 집안 행사나 꼭 평일에만 할 수 있는 볼일, 병원을 가거나 아이들 기관 관련 이벤트가 있을 때 주로 연차를 썼다. 평일의 연차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이벤트였지만, 막상 그 짧은 시간에는 필요한 일을 해치우느라 언제나 분주했다.






취업한 이래로 여름에 쉴 수 있는 일주일의 여름휴가 외에는 한 번도 길게 쉬어보지 못했다. 당시 육아 휴직은 낼 수 없는 직장인지라 쓰지 못했고, 두 번의 출산에 90일가량의 출산 휴가를 보냈을 뿐이다.



평일을 집에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물론 집에서 보내는 주말이 있다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며 식구들 끼니를 챙기느라 은근히 바쁜 그 시간은 제외하기로 한다.



어쩌다 평일에 집에 있거나 동네를 걸을 때면, 낯익은 환경과 공기가 문득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익숙한 곳이었는데, 눈부신 햇살과 여유 있게 거리를 걷는 행인들이 있는 거리는 마치 20년을 직장인으로 산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인 것 같았다.






우한 폐렴이라는 뉴스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되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평범한 일상이 하나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확진자가 증가하고 근무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재택근무를 실행하게 되었다. 회사마다 코로나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일 텐데, 내가 다니는 직장의 경우 인원의 30-50%가 번갈아서 재택근무를 실행해 사무실의 인원 밀집도를 낮추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직책자인 나는 상관의 지침상 팀장이라는 이유로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다. 재택근무는 혜택이 아니며, 또 다른 업무 방식일 뿐이라는 의견에도 일견 동의하지만, 실은 재택 하는 팀원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였다. (코로나가, 팀장은 알아서 비껴 가려나......)



그렇게 시간이 반년 이상 흘렀고,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위세를 떨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팀장들에게도 일주일에 하루는 재택을 허용(?) 해 주기로 한 것. 그래서 나는 연말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하루는 집에서 일하고 있다.



집에는 내 책상도 없고 업무 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던 지라 상의 끝에 무려 새 책상과 의자까지 거실 한편에 마련하였다.






집에서 맞는 평일은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이제는 잘 적응해서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무실로의 출근이 필요 없으니 아침에는 업무 시작 전까지 여유 있게 잠을 잔다. 내가 집에 있는 날에는 둘째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와 이불속을 파고들어 나를 꼭 껴안고 옆에 눕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달콤한 순간이다.



아침잠이 많아 더 자고 싶어 하는 둘째를 두고, 일어나 볼일을 본다. 아주 간단하게 아침을 챙기기도 하고, 기계가 할 수 있는 집안일도 동시에 걸어두고 업무를 시작한다. 세탁기와 로봇 청소기를 동시에 돌리는 것은 늘 하는 방식이다.



메일 체크, 페이퍼 작업, 화상 회의, 전화 통화, 메신저 대화 등 사실하는 일은 회사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쁠 때는 퇴근 시간을 지나서 어두워질 때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단점이라면 당연하지만 회사에 있을 때와는 달리 커피나 식사는 직접 챙겨야 한다는 것. 게다가 아이들 또한 온라인 수업이 일반적이다 보니 짧은 점심시간 내에 뭔가를 해서 먹는다는 것 또한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재택근무를 해 보니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붐비는 대중교통이나 앞뒤로 꽉꽉 막히는 출근길 정체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조용한 공간에서 필요한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것도.



특히 내가 살아가는 집이 아침과 낮, 오후에 어떤 풍경을 띄고 하루가 지나가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일이었다.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다가 문득 창 밖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하였다. 말을 줄이고 편안한 공간에서 고요하게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었다. 물론 갑자기 튀어나와 엄마를 방해하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막간을 이용해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은 외출을 하였다. 미리 예약을 하고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옆 동네 유명한 케이크 베이커리에 10분 동안 차를 몰고 가서 케이크를 픽업해 왔다.



다녀와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까지 다소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마침 가족의 생일이 있었기에 더욱 보람 있는 나들이였다.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나에게 흥미진진한 스릴과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이렇게 사 온 조각 케이크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이들과 즐거운 티 타임을 갖기도 했다. 평소와는 다른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평일이 아니었다면 사지 못했을 아름다운 딸기 케이크 또한 그 날의 전리품이었다. 짧은 외출이 이토록 뿌듯할 수 있다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는 할 수 없기에 간단하면서 맛있는 점심을 차리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이 날은 김치 콩나물국을 끓이면서 콩나물 무침을 하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고 김을 곁들여 아주 맛있게 먹었다. 소박하지만 집에서 먹는 이런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식사가 좋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기도 하고, 집 근처 상가 ATM에서 필요한 돈을 찾아오기도 했다. 평일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코로나 이전에 생각할 수 없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한참인 요즘이다. 내가 언제 백신을 맞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올해 안이라면 어느 정도 집단 면역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짐작하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면 우리 회사의 재택근무는 아마도 사라질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재택근무가 새로운 방식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사무실 공간을 줄이며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해도 회사 입장에서 당장 전격적인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쉽게도 예전과 똑같이 돌아가거나, 혹은 일부 달라지더라도 맞춰서 잘 적응하는 것 또한 나의 몫임은 분명하고.



다시 할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일주일에 하루, 몇 달간 시행했던 제한적 재택근무 덕분에 큰 힘을 얻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일 아침에 집의 풍경은 이렇구나,

낮에 동네에 나가면 이런 일들이 있네,

앞으로 정규직을 은퇴하고 집에서 일한다면 이런 삶을 살겠구나,

아이들은 낮에 이렇게 지내고 있구나,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코로나 덕분에 새삼스럽게 느끼고 알 수 있었다.



나의 한시적 재택근무는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추억'으로 남게 될까? 알 수 없어 더 소중한 하루하루이다.



https://brunch.co.kr/@richlemon/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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