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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Feb 07. 2021

어느 별에서 왔니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연애 4년, 결혼 17년 차인 우리 부부.

딸과 아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맞벌이 부부로 살고 있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되었을뿐더러, 살면서 겪은 숱한 일들로 이제는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부부이자 가족이고,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쓰려다 보니 뭔가 끈끈한 전우애가 샘솟는다 ㅎㅎ)이기도 하다.



이렇게 긴 세월을 함께 보내도, 아직도 늘 평온하고 균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각자 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는 냉랭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고 - 그나마 결혼 초와 대비해서 내가 달라진 점은 한랭전선은 되도록 짧게 보내려 하는 편 -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을 때는 힘들었던 한 주를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서로의 술친구를 자처하기도 한다.







편하지만 항상 마음을 놓을 수는 없고, 때로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교적 사이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베프가 되었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도 나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지 싶다.



아이들 키우며 일하느라 늘 지치고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고 보니, 방식은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노력이 나의 희생보다 더하다 혹은 덜하다를 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고 알았다.



상대방의 '다름'을 꼭 수용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이해는 하지 못해도 '그럴 수도 있다'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실은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정신적 스킬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연애와 결혼 초기, 성격도 성향도 표현법도 사뭇 다른 우리는 크고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 안 통하는데 무슨 대화를? 또는 말해봤자 들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서로를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잘해보겠다고 한 때 그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남녀관계에 대한 고전을 사서 읽기도 했고, 심지어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못 보는 여자'와 같은 제목의 책까지 소장하고 있었다. (결혼 후 그가 가져온 그 책들을 읽어보려 했는데, 그다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흥미가 가지 않아서 결국 읽지 않고 폐기 처분했다는 후일담이...)






남녀 관계 혹은 연애학에 관련된 책들이 그때도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은, 예전에도 지금도 연인과 부부 관계는 쉽고도 어려운 사이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갈수록 남녀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특정 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별이 아닌, 개인에 따라 다른 기준과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살면서 느껴지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점'의 원인과 이유는 무엇일까, 가볍게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나름대로 신문명(?)과 신기술을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렇다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는 스타일이 아님은 확실하다.



예를 들면 업무용 PC로 데스크톱을 고수하다가 노트북으로 바꾼 지 이제 3년이 됐다. 기존에 쓰던 줄 달린 이어폰이 익숙해 굳이 무선 이어폰에 관심이 없다가, 운이 좋아서 생긴 무선 이어폰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책은 종이로 읽어야 제맛이다. 아직도 두어 달에 한 번씩 종이책을 사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일정 관리는 두세 개의 다이어리를 사용해서 한다. 괴발개발 흘려 쓴 글씨지만 손으로 적어야 더 기억이 잘 되는 것 같다, 암만.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일상과 습관들이, 너무 올드하고 고루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 계기가 있으니, 바로 함께 사는 '그' 덕분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자리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드는 나와는 달리, 그는 태블릿 PC를 켜고 요가매트 위에서 너튜브 홈트레이닝이나 요가 영상을 보며 운동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여가 활동은 넷OOO와 왓O, 두 개의 콘텐츠 구독 사이트에서 최신작을 보는 것이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책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자료 수집 또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한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은 또 어떤가. 천만다행인 것은(?) 폰을 자주 바꾼다거나 가장 좋은 사양의 기기를 고집하지는 않지만, 바꿀 때 괜찮은 것으로 심사숙고해서 교체한 다음, 세컨드 기기를 함께 활용한다.



그의 기기들, 내가 쓰던 4년 된 폰을 배터리 교체하고 새로 백업해 세컨드폰으로 활용하고,  가장 아끼는 메인(?) 이어폰과 운동할 때 가볍게 쓰기 위한 세컨드 이어폰도 있다.



집에서 각자 휴식을 취할 때, 그가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것들이 뭘까 궁금해서 옆에서 곁눈질하면, 십중팔구 전자제품을 살펴보거나, 전자제품의 리뷰 영상을 보거나, 전자제품을 저렴하게 혹은 빠르게 배송해 주는 사이트를 구경하는 것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광속 배송을 표방하는 모 쇼핑 사이트에 가입하더니, 순식간에 흰색과 검은색의 무선 충전기들이 속속 집으로 도착하였다. 한 개는 집에서 쓸 것이고, 한 개는 사무실용이라고 했다.






한 집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좋아하는 것도 관심 있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같은 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나, 가끔은 참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전자제품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솔직히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 가끔 잘 모르는 용어를 섞어 가며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사실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궁금하거나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 특별히 낭비하는 것은 아니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지켜보게 되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한 때는 그릇을, 한 때는 가방을, 한 때는 집안 살림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신기술과 뉴 테크놀로지에 꽂혀 새로 나오는 전자기기를 살펴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쓰면서도 현실적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내 기준과 취향에 맞추도록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너무 다른 그와 나를 보면서 스스로 체득한 결혼 생활의 지혜를 낮게 읊조려 본다.



*이 글의 초안을 며칠 전에 저장하고, 글을 써서 올리는 오늘, 그의 스마트폰은 3개가 되었다. (기존 두 개는 원래 쓰던 폰 + 집안용으로 4년 된 옛날 폰) 이유는 메인 폰(?)으로 업무상 통화가 너무 많아져, 분리를 위해 세 번째 폰을 장만했다고 한다. 다 괜찮은데, 여기저기 있는 폰들 사이에 내 폰을 찾을 때 참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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