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현 Jul 02. 2023

이탈리아 여행 기억하기

에피소드 단편선(1)

#여행요약

 아내와 함께 2주간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밀라노, 볼차노, 피렌체, 로마를 거쳤으며 피렌체에서는 토스카나 투어, 우피치미술관 투어, 로마에서는 바티칸 투어를 이용했다. 숙소는 모두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가정집에서 묵었으며 도시 간 이동은 기차, 도시 내 이동은 도보,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였다. 대부분의 날씨는 화창하고 더웠다. 하루 평균 1만 8천보를 걸었다.


#소매치기

 언제부턴가 유럽 여행에서 ‘소매치기’라는 컨텐츠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번 이탈리아 휴​가를 앞두고도 가장 많이 들은 주의사항 역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조언이었다. 특히 로마를 조심해야 하고 로마에서도 트레비분수 같은 핫플레이스는 소매치기에게도 핫플레이스라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들고 다닐 귀중품도 없고 어차피 털릴 사람은 털린다는 마인드가 강해서 크게 주의하지는 않는 편이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는 현금이나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보니 더 관심이 가질 않았다. 로마가 일정의 마지막이다 보니 거기서나 조심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피렌체에서 이 단골 컨텐츠를 잠시 느껴볼 수 있었다.


 오후 3시가 좀 넘어 작렬하는 햇살에 정신줄을 놓을 때에 Gelateria La Carraia에서 젤라또를 먹고는 Ponte alla Carraia에서 아내와 수다를 떨며 탁한 아르노 강을 건너고 있었다. 젤라또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뒤에 계신 분들이 앞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아내 옆으로 한 사람 정도는 지나갈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보여서 제쳐 갈 수 있도록 발걸음을 늦춰주었다. 우리가 너무 급하게 속도를 줄인 탓인지 뒤에 있던 남자는 내가 매고 있던 가방에 살짝 부딪혔는데 신경 쓸 수준은 아니어서 앞만 본 채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즈음 우리는 젤라또에 대한 품평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저녁 식사 시간은 어디서 보내야 할지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다시 내 가방에 물리적인 영향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중동 계열의 남성 세 명이 보였다. 곧이어 내 바로 뒤에 있던 남성 1(아마도 가방에 물리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갑자기 본인의 정강이를 붙잡으며 온몸으로 통증을 표현했다. 얼마나 적극적인 표현이었는지 아내는 ‘내가 쪼인트를 깐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 남성 1은 옆에 주차되어 있는 스쿠터를 가리키며 부딪혔다고 바디랭귀지로 설명하고 있었고 다른 남성 2는 그에게 가서 괜찮냐며 위로를 하고 있었고 가장 뒤에 있는 배가 많이 나온 남성 3은 남성 1을 나무라고 있었다. 우리와의 안전거리 확보를 잘못해서 스쿠터에 부딪혔냐고 혼내나 본데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데 굳이 거리에 주차된 스쿠터와 내 사이 좁은 길로 지나가다가 부딪히다니..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가방으로 내려갔고, 가방의 지퍼는 반정도 열려 있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이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구나.


 그들은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에 나는 남성 1과 충돌이 있었냐는 아내의 질책을 뒤로하고(아내는 타인에게 눈곱만큼의 피해라도 주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가방을 뒤적였다. 내 여행용 휴대가방은 크기가 작아서 콤팩트카메라와 안경집 정도만 넣고 다녔는데 하필 이 날은 먹다 남은 물 페트병을 억지로 쑤셔 넣었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될만한 카메라나 안경집(무려 젠틀몬스터 안경이 있었다)을 얻기 위해서는 엉덩이에 붙어 걸음걸이에 맞춰 움직이는 가방을 고정하고 지퍼를 열고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페트병을 건져내야 하는 난이도가 있는 가방 구조가 만들어졌다. 1/3 정도 튀어나와 있는 페트병을 붙잡고 네가 날 살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를 진정시켰다. 저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남자 무리를 보라. 가만히 서 있는 스쿠터 탓을 하며 정강이를 붙잡던 남성과 그를 걱정하고 나무라던 남성 모두 함께 웃고 떠들며 골목 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Ponte alla Carraia와 젤라또집 Gelateria La Carraia이 보인다 | 여행 기간에는 작은 가방을 휴대하고 다녔다
해질녘의 같은 장소 | 젤라또는 보통 사자마자 녹아내린다
작가의 이전글 달콤, 씁쓸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