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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그들을 보며 박수와 야유만 외치다

내 살길은 찾지도 못하면서..

by 이승현

원대한 꿈이나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멋지다. 제법 부럽기도 하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다지 열심히도 안 했고, 간절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기억하는 편이 ‘머리가 안 좋다’를 방어하기에도 수월하다. 아무튼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할 것 같아서 흉내나 내다가, 힘드니까 대충 했다. 그래서 성적도 그럭저럭 나왔고, 그냥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사회에선 좀 달랐다.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어떻게든 처리했고, 월급을 받는 이상 퍽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다. 그게 알바든, 회사든 그랬다. 대단한 야망은 없어도 눈앞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면이 사회에서 의외로 괜찮게 보였던 모양이다. 10대, 20대의 노력에 비해 꽤 잘 살고 있다는 자각도 있다. 그래서 항상 주변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 다만, 나의 럭키비키가 언제까지 따라줄지는 모른다. 이게 끝까지 괜찮을까? 한국 나이로 불혹을 찍으며 변곡점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최근 뉴스가 꽤 재밌다. 하루를 마치고 변론 하이라이트 보는 맛에 산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을 강탈하는 두 어르신이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황교안은 사법고시도 통과한 수재에 검사장 출신,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다. 김문수는 노동운동의 황태자로 시작해 국회의원, 경기도지사까지 다 해봤다. 이후 군소 정당을 떠돌며 한물간 옛사람처럼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여기서 ‘이제 다 했구나’ 하고 은퇴할 법한데, 이들은 그러질 않는다. 황교안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거리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외치다 윤석열 변호인단에 합류했고, 김문수는 이미 70을 넘긴 나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직에 임명되어 내란죄 혐의자까지 감싸며 극우 세력의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보통 이 나이면 건강검진 예약이나 할 법한데, 이들은 오히려 ‘한 판 더!’를 외치며 달리고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저 연륜에 저 힘을 갖고 움직이는 게 놀랍다. 어쩌면 정말 인생을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겨우 마흔 됐다고 어떻게 버텨나갈지 불안해하는 나와, 차원이 다른 정력가들의 활동에 그저 경의를 표한다.


나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맛있는 음식에 와인 한 병 마시고, 일 년에 한 번 여행이나 가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떠들다가, 요양원에서 짧게 머물다가 갈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가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부럽기도 하고, 경의롭기도 하다.


그런데 그 좋은 힘을 더 좋은 곳에 썼다면, 나는 박수만 쳤을지도 모르겠다.


202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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