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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될 건축물을 그리며

브루탈리스트

by 이승현

#브루탈리스트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늘 돌아보게 된다. 이 길이 맞았던가, 그리던 모습인가.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목적지보다 과정에 집중했을지 모른다. 도착에 대한 불안감이 클수록 우리는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길에 더 집착한다. 그 불안한 목적지를 보길 바라며 신념과 의지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때로는 나만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멀리 돌아가야 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 도착하게 된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맞는가. 과연 모든 선택이 우리의 의지였을까. 과거로 돌아가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사실 그 순간의 나는 그 선택 외에 다른 길을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질주하는 도로와 레일 위에서 그들의 선택이 오직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지나온 길이 하나의 선으로 남는다. 앞으로 달려갈 길 역시 마찬가지다.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선택을 바라볼 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감정조차 동조라고 단정 짓는다. 이해와 동의는 전혀 다른 문제임에도 말이다.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지는 개인의 신념과 환경 속에서 달라지는 법이지만, 최소한 타인의 선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나는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 위에 서게 될지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들이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완성해 가고 있는지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하나의 선으로 본다면, 나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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