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살아가기(feat.<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리뷰 #삶의 통찰 배우기

by 로스차일드 대저택

오늘은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든 생각을 공유합니다.


지난 주말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모두 읽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묵혀왔던 책인데 이해력이 떨어져 두었다가, 최근에 다시 책을 폈더니 쉽게 이해되어 후루룩 다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1988년에 초판 발행된 흥신문화사 발간본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제목이 다소 다릅니다.


제가 읽은 책의 번역 제목은 <소유냐 삶이냐>입니다.

32486057630.20221229073108.jpg 저자: 에리히 프롬 / 출판: 홍신문화사



전자의 제목과 후자의 제목에서 교체된 단어는 '존재와 삶'입니다.


'존재=삶'의 수식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먼저, 존재 혹은 삶과 대비되는 '소유' 지향의 방식을 생각해 봅니다.


2025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소유 지향의 방식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갖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곧 출시되는 아이폰 17, 외제차, 서울 아파트 국민 평수 등 램프의 지니에게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갖고 싶다'라는 소원을 빌 것입니다.

ChatGPT_Image_2025%EB%85%84_9%EC%9B%94_15%EC%9D%BC_%EC%98%A4%ED%9B%84_04_02_43.png?type=w1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된 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램프의 지니에게 소원을 빌어 원하는 물건을 갖게 된다면 그에 대한 만족감이 지속될 수 있을까요?


최신형 아이폰 17은 언젠가 구형이 될 것이고, 외제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아파트 국민 평수는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 소유주가 된다는 우월감을 줄 수 있겠지만, 행복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서울 아파트 국평 1세대를 소유하게 되면, 그다음은 강남 아파트 소유자를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강남 아파트를 소유하면 더 넓은 평수를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유적 삶의 방식은 잠깐의 만족감 이후에 더 큰 소유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반면, 존재의 방식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충실한 삶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더 큰 만족을 위해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 나, 직장에서 열일하는 나, 퇴근 이후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



삶에서 나의 존재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가치롭게 존재하지 않으면 찰나의 시간은 단숨에 지나갑니다.


몇 년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삶의 방식이 떠오릅니다.



32463455630.20231129091918.jpg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 출판: 민음사


조르바는 매 순간 현재의 삶에 충실합니다.


갈탄 탄광에서 갈탄을 캐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탄광이 무너질 때 그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인부들을 구해냅니다.


모두가 한 여성을 비난하고 죽이려고 할 때,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군중의 광기를 공개적으로 소리쳐 비난합니다.


현재에 마주하는 사랑에도 최선을 다하며, 친구와 함께 하는 술 한 잔을 최대한 즐길 줄 압니다.


순간순간을 나로 살고 있기에 그의 삶은 조르바 그 존재 자체로 채워집니다.


ChatGPT_Image_2025%EB%85%84_9%EC%9B%94_15%EC%9D%BC_%EC%98%A4%ED%9B%84_04_05_34.png?type=w1


저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자본주의를 부정한다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명하게 살아갈 방식을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과 세계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이 사회를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적정 규모의 자본을 소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본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매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돈은 중요하지만, 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고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투자하는 이유는 돈에 매여 있지 않기 위함입니다.


자본의 축적을 통해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하고, 외부의 요구에 의한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행동의 비중을 높여나가길 원합니다.


단순히 100억, 200억이 있다고 부자일까요?


진짜 부자는 돈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본은 죽는 날까지 잠시 맡아놓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 숨이 다하게 되면,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은 타인과 사회에 환원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유로운 제 삶을 위해 잠시 맡아두는 것이며, 삶의 과정에서도 저의 자본은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의 소유물도 줄어들고, 존재도 깎여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이 자본주의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소유냐 존재냐>가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지점입니다.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기에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으면, 저는 언제든지 소유적 삶의 방식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제가 에리히 프롬과 같은 양질의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진짜 나로 살고 싶기에 저는 앞으로도 좋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시간 되실 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우리 모두 온전한 '나'로 살아가십시다.


감사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진심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흘러간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신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투자에서 바보가 되는 시기는 반드시 옵니다